손님이 종이에 뭘 적더라고. 적었다 지웠다를 한참 하다가 결국 접어서 넣었어.
나중에 물어보니 사과할 말을 고르는 중이었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단골 얘기로는 요새 다 그렇대. 사과는 해야겠는데 말을 꺼내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거지.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런지는 몰라. 본 것만 적을게.
이게 재밌는 대목이야. 무협 읽어보면 사과하는 장면이 꽤 나오는데, 말로 안 해.
포권을 하거나, 술을 따라 올리거나, 병기를 내려놓거나. 심하면 무릎을 꿇지. 말은 짧아. 미안하다는 말 대신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동작으로 보여줘.
세 번째가 커. 사과가 끝났는지를 양쪽 다 아는 거야.
여기가 핵심이야. 말로 사과하면 상대가 받아줬는지가 애매해.
괜찮다고 했는데 진짜 괜찮은 건지 모르겠고, 그래서 또 사과하게 되고, 그러면 상대는 또 답해야 하고. 끝나는 지점이 없어.
형식이 있으면 그게 없어. 잔을 받으면 받아준 거고, 안 받으면 아직인 거지. 그래서 강호에서는 사과가 짧게 끝나. 질질 안 끌어.
하나 더. 무림의 사과에는 손해가 껴 있어.
무릎을 꿇는 건 체면을 내놓는 거고, 병기를 내려놓는 건 무장을 푸는 거야. 강호에서 체면이랑 무장이 얼마나 큰지는 말할 것도 없지. 자기를 낮추는 게 무기였다는 얘기를 전에 했는데, 사과 자리에서는 그게 진짜 값이 돼.
그러니까 사과가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말이 좋아서가 아니야. 뭔가를 실제로 내놨기 때문이야.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유가 대충 이래.
말로만 하면 가벼워 보일까 봐 걱정이고,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선물을 주자니 과한 것 같고, 안 하자니 부족한 것 같고.
정해진 게 없으니까 매번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거지. 그러다 고르는 데 지쳐서 아예 안 꺼내게 돼. 그 종이를 접어 넣은 게 그거야.
각박해졌다는 얘기로 갈 건 아니야. 나는 그렇게 안 봐.
오히려 제대로 하고 싶어서 못 꺼내는 거잖아. 대충 하기 싫으니까 고르는 거고.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야.
다만 강호에서 배울 게 하나 있다면 이거야. 길게 말하지 말고 짧게 하고, 대신 뭔가를 하나 내놔. 밥을 사든 시간을 내든. 말을 고르는 데 쓸 힘을 그쪽에 쓰는 게 나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여기서 한 번 말해봐. 나한테 하는 셈 치고. 소리 내서 해보면 대개 짧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