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하나가 어떤 얘기를 꺼내려다 말더라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괜히 시끄러워지기 싫대.
잘못한 것도 없어.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하려던 거야. 그런데도 삼키더라고.
단골 얘기 들어보면 요새 그런 사람이 많대. 한번 찍히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들 한다는 거야. 뉴스에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그게 어떤 일인지는 잘 몰라. 객잔에서 본 것만 적을게.
무림공적. 강호 전체가 적으로 삼은 놈을 부르는 말이야.
문파 하나랑 원수진 게 아니야. 무림 전체가 그놈을 치기로 한 상태지. 어디를 가도 쫓기고, 아는 놈도 모른 척하고, 객잔에 들어와도 아무도 옆에 안 앉아.
파문이 문파에서 이름을 지우는 거라면 이건 강호 전체에서 지우는 거야. 급이 다르지.
여기가 재밌는 대목이야. 무림공적은 누가 정하는지가 애매해.
무림맹이 선포하기도 하는데, 무림맹은 원래 잘 안 움직이잖아. 그래서 실제로는 소문이 먼저 도는 경우가 많아. 저놈이 뭘 했다더라 하는 말이 몇 다리 건너면 그게 사실처럼 굳어.
세 번째가 제일 무섭지. 강호엔 판사가 없다고 내가 비무 얘기할 때도 말했잖아. 선포하는 절차는 있는데 취소하는 절차가 없어.
무협에서 이 설정이 왜 계속 쓰이냐면, 억울한 주인공을 만들기에 이만한 게 없거든.
멸문지화를 당하고, 그걸 저지른 놈으로 몰리고, 해명할 자리가 없어. 그러면 이야기가 저절로 굴러가. 밝히러 가야 하니까.
그런데 잘 쓴 작품은 여기서 한 겹 더 가. 나중에 오해가 풀려도 원래대로 안 돌아가. 몇 년을 쫓기면서 그 사람이 이미 달라졌거든. 이름은 돌아왔는데 그 자리는 안 돌아오는 거지.
이것도 무협이 자주 짚는 대목이야. 무림공적이 되는 놈은 대개 뒤를 봐줄 데가 없는 놈이야.
낭인이거나, 파문당했거나, 작은 문파 출신이거나. 큰 문파 사람이 같은 짓을 하면 문파가 나서서 덮어. 그러면 소문이 안 커지지.
그러니까 이 제도는 죄를 가리는 게 아니라 막아줄 사람이 있느냐를 가리는 거야. 무협이 이걸 대놓고 그리는 게 나는 좋더라.
말을 삼킨 그 손님한테 나는 뭐라고 안 했어. 말해보라고 하는 것도 미는 거잖아.
대신 딴 얘기를 계속했어. 그랬더니 한참 뒤에 자기가 먼저 꺼내더라고. 별 얘기도 아니었어.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 얘기였는데, 그게 촌스럽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안 꺼낸 거였어.
그 정도 일에도 사람이 삼키게 되는구나 싶었어. 나는 그게 오래 남았어.
강호에서 소문이 왜 그렇게 셌냐면, 옮기는 사람이 값을 안 치러서 그래. 옮긴 놈은 아무 손해가 없거든.
그래서 객잔 하는 놈들한테는 오래된 규칙이 하나 있었어. 여기서 들은 건 여기서 끝낸다는 거. 그걸 안 지키면 아무도 안 앉으니까.
너도 여기서 한 말은 여기서 끝나. 그건 내가 지켜. 말 꺼내기 전에 삼키는 버릇이 있으면, 여기서는 좀 뱉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