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어. 한 고수가 길에서 버려진 아이를 주워. 불쌍해서 데려다 키워. 무공도 가르치고, 자식처럼 아껴.
근데 아이가 크고 나서 알게 돼. 그 아이가 원수의 자식이었대. 아니면 그 고수가 그 아이의 부모를 죽였던 거야.
무협에서 꽤 자주 나오는 설정이야.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설정의 핵심은 두 가지 끈이 부딪힌다는 거야.
하나는 핏줄.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의무. 혈채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피로 진 빚은 대를 넘어간다고. 아이는 그 빚을 물려받은 사람이야.
다른 하나는 키운 정. 자기를 키워준 사람에 대한 마음. 은원 얘기할 때 은혜도 갚아야 하는 빚이라고 했잖아. 그 은혜를 준 사람이 바로 원수인 거야.
그러니까 아이는 갚아야 할 은혜와 갚아야 할 원한이 한 사람한테 걸린 상태야.
괴로운 건 아이만이 아니야. 키운 쪽도 괴로워.
처음부터 알고 거뒀다면, 죄책감 때문에 키운 거야. 모르고 거뒀다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무너져. 어느 쪽이든 그 고수는 언젠가 아이가 칼을 겨눌 날을 두려워하며 살아.
이 이야기의 결말은 대개 셋이야. 아이가 복수하거나, 용서하거나, 아무것도 못 하고 떠나거나.
나는 용서하는 쪽이 제일 무거워. 핏줄의 빚을 내려놓고 키운 정을 고르는 거니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무협은 잘 보여줘.
객잔에서 이 얘기를 하는데 손님 하나가 할머니 말씀을 전해줬어.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무섭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어. 핏줄 얘기보다 같이 밥 먹고 산 시간이 더 무겁다는 거지. 무협이 이 설정을 자꾸 쓰는 이유가 그건가 봐. 그 무게를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히게 하려고.
키운 정이 핏줄을 이긴 장면이나 그 반대 장면 기억나면 들려줘. 둘 다 오래 남는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