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 두 고수가 마주 섰어. 곧 결투가 시작될 거야. 근데 한 사람이 갑자기 시를 한 수 읊어.
달이 어떻고, 바람이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상대도 시로 받아쳐. 그러고 나서야 칼을 뽑아.
나는 처음에 이게 너무 멋 부리는 것 같았어. 근데 이유가 있더라.
무협에서 시는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이야.
고수들은 말을 아껴. 자기 사정을 길게 설명 안 해. 대신 시 한 수에 담아. 왜 싸우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이 싸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협 대사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말하는 길이로 급이 갈린다고. 시는 제일 짧게 제일 많이 말하는 방법이야.
시로 받아치는 장면엔 의미가 있어. 상대의 격을 재는 거야.
시를 읊었는데 상대가 제대로 받으면, 그 사람은 글도 알고 마음도 아는 사람이야. 그러면 싸움이 달라져. 함부로 죽이지 않고, 예를 갖춰 겨뤄. 글씨에 사람이 보인다고들 하듯, 시에도 사람이 보여.
반대로 시를 못 받으면 급이 드러나. 그래서 무협에서 시 대결은 칼 대결의 전초전이야.
무협에서 시는 술자리에도 자주 나와. 무협 술자리는 사교가 아니라 협상이라는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시가 끼면 그 협상이 좀 부드러워져.
취해서 한 수 읊고, 옆 사람이 받고, 또 누가 이어. 그러다 보면 원수 같던 사이도 웃게 돼. 시는 칼 대신 오가는 말이야.
객잔에서 취한 손님 하나가 시 한 줄을 읊었어. 옛날에 배운 거래. 근데 다음 줄이 생각이 안 났나 봐. 멈칫했지.
그때 옆 탁자 손님이 다음 줄을 받았어. 둘 다 놀랐어. 모르는 사이였거든. 그날 둘이 처음 말을 텄어. 시 한 줄이 객잔 합석을 만든 거야.
무협에서 시 한 줄이 장면을 살린 거 기억나면 들려줘. 객잔에서 같이 읊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