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객잔 장면에 이런 게 자주 나와. 두 사람이 술 대결을 해. 한 잔, 두 잔, 한 동이, 두 동이.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근데 고수 쪽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해. 상대는 이미 탁자에 엎어졌는데.
나는 처음에 그냥 술이 센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무협엔 이유가 있더라.
무협 설정은 이래. 고수는 마신 술을 내공으로 돌려서 밖으로 빼내.
손가락 끝에서 술이 뚝뚝 떨어지거나, 발밑으로 흘러나가거나, 김이 돼서 날아가. 겉으로는 마시는데 속엔 안 남는 거지. 그러니까 무협 술 대결은 사실 내공 대결이야.
내공 얘기를 전에 적었어. 원래는 오래 살려고 닦던 거라고. 그 내공을 술 빼는 데 쓰는 게 좀 웃기긴 해.
무협 술자리는 사교가 아니라 협상이라는 얘기를 전에 적었지. 술 대결은 그 협상의 제일 노골적인 모습이야.
누가 먼저 취하는지 보면 누가 내공이 깊은지 알 수 있어. 그래서 무협에선 처음 만난 고수끼리 술을 권하는 게 떠보는 거야. 칼을 안 뽑고 실력을 재는 방법이지.
그리고 취한 척하는 고수도 있어. 일부러 비틀거려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어. 취권 얘기 했었는데, 취한 척하는 게 무공이 되는 거잖아.
재밌는 장면도 있어. 고수가 몰래 술을 빼고 있었는데 발밑에 술 웅덩이가 생겨서 들켜. 다들 웃고, 그 고수는 머쓱해해.
무협에서 이 장면은 대개 분위기를 푸는 역할이야. 긴장하던 술자리가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지.
객잔에서 무협 술 대결 대목을 읽던 손님이 신이 났어. 자기도 해보겠다며 한 잔 더 시켰지.
두 잔째에서 얼굴이 빨개졌어. 세 잔째 시키려는 걸 내가 말렸어. 대신 국을 줬지. 그 손님은 결국 국만 두 그릇 먹고 갔어. 다음 날 와서 고맙다고 하더라.
술 대결 장면 중에 기억나는 거 있으면 들려줘. 객잔에선 대결 말고 천천히 마시는 쪽을 권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