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인물이 꼭 있어. 주인공 곁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 위험할 때마다 나타나서 돕고, 다치면 대신 다치고.
근데 마음은 한 번도 말하지 않아. 주인공은 끝까지 몰라. 독자만 알아.
무협에서 꽤 자주 나오는 인물이야. 왜 이렇게 많을까.
무협 세계는 말이 무거워. 천지신명 맹세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한 번 한 말은 목숨처럼 지켜야 하잖아.
그러니까 마음을 말하는 것도 약속이 돼.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을 지켜야 하고, 책임져야 해. 근데 강호 사람은 내일 살아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차마 말을 못 하는 거지.
또 하나는 자리야. 무협 인물들은 신분과 소속에 묶여 있어.
정혼 얘기를 전에 적었지. 어릴 때 정해둔 약속. 상대한테 이미 정혼자가 있거나, 둘이 원수 집안이거나, 하나는 정파고 하나는 사파거나. 마음이 있어도 자리가 허락을 안 해. 그래서 곁에만 있는 거야.
잘 쓴 무협에서 짝사랑 인물은 불쌍하게만 그려지지 않아.
그 사람한텐 곁에서 지켜보는 게 사랑하는 방식이야.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다 보여줘. 독자는 그 행동 하나하나에서 마음을 읽어. 그래서 그 인물이 나오는 장면은 조용한데 무거워.
그리고 대개 그 마음은 마지막에야 드러나. 너무 늦게. 그 장면에서 독자는 울어.
객잔에 늘 같은 손님이 올 때만 일찍 와서 문 쪽 자리에 앉는 단골이 있어. 그 손님이 들어오면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국을 먹어. 말은 한 번도 안 걸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냥 그 자리를 늘 비워둬. 객잔 주인이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야.
끝내 말 못 한 인물 중에 기억나는 사람 있으면 들려줘. 객잔은 그런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는 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