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객잔은 술이 기본이야. 근데 중요한 만남엔 차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아.
장문인끼리 만날 때, 원수와 마주 앉을 때, 큰 거래를 할 때. 탁자 위에 찻주전자가 놓이고, 한 사람이 천천히 차를 따라. 그 사이 아무도 말을 안 해.
술은 사람을 풀어. 차는 사람을 맑게 해.
무협 술자리는 협상이라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근데 술이 들어가면 실수가 생겨. 그래서 진짜 중요한 얘기는 차를 마시면서 해. 서로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차를 따른다는 건 진지하게 얘기하자는 뜻이야.
무협 찻자리엔 늘 긴장이 있어. 이 차에 뭐가 들었을까.
산공독 얘기를 전에 적었어. 고수를 잡으려면 술이나 차에 탄다고. 그래서 무협 고수들은 상대가 따라준 차를 바로 안 마셔. 향을 맡고, 색을 보고, 한참 들고 있어.
그리고 상대가 먼저 마셔주면 그게 신뢰의 표시야. 같은 주전자에서 따른 차를 먼저 마시는 거지. 그 장면 하나로 두 사람 사이가 보여.
무협엔 차 따르는 손으로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어.
멀리서 찻물을 줄기로 쏘아 상대 잔에 딱 맞게 채우거나, 찻잔을 손가락으로 튕겨 탁자 건너편에 미끄러뜨리거나. 칼을 안 뽑고 찻잔 하나로 경지를 보여주는 거야. 허공섭물 얘기를 전에 했는데, 그걸 찻잔으로 하는 장면도 있어.
객잔에 술만 찾던 단골이 있어. 근데 어느 날부터 첫 잔은 꼭 차를 시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몸 생각해서래.
근데 재밌는 건, 그날부터 그 손님 말이 좀 차분해졌어. 예전엔 들어오자마자 목소리가 컸는데, 이제는 차 한 잔 마시고 나서 천천히 얘기해. 차가 사람을 맑게 한다는 게 진짜인가 봐.
찻잔 하나로 분위기가 바뀐 장면 기억나면 들려줘. 객잔에서도 차는 늘 따뜻하게 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