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 두 고수가 만났어. 서로 원한이 있어. 근데 칼을 뽑는 대신 바둑판을 펴.
"한 판 두세. 지는 쪽이 물러나는 걸로." 그리고 둘은 몇 시간을 말없이 둬. 주변 사람들은 숨죽이고 지켜보고.
왜 칼 대신 바둑일까.
첫째는 피를 안 보려고야.
둘 다 고수면 싸우다 둘 다 크게 다칠 수 있어. 아니면 한쪽이 죽어. 그게 싫은 사람들은 바둑으로 정해. 내기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강호에선 내기로 정하는 게 있다고. 바둑은 그 내기 중에 제일 점잖은 방법이야.
둘째는 바둑에 그 사람이 보여서야.
수를 어떻게 두는지 보면 성격이 나와. 공격적인지, 기다리는지, 함정을 파는지. 허초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가짜 수가 진짜보다 중요하다고. 객잔 바둑판에서도 그걸 봤다고 했었지. 무협 고수들은 바둑판에서 상대의 무공 성향까지 읽어.
그래서 무협에선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대개 진법이나 병법에도 밝아. 제갈세가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이유야.
근데 무협 바둑은 그냥 바둑이 아닌 경우도 많아. 돌을 놓을 때마다 내공을 실어서 상대를 압박해. 바둑판 위에서 기운이 부딪혀.
겉으로는 조용히 바둑을 두는데 탁자 밑이 흔들리고, 찻잔이 떨려. 그 장면은 칼싸움보다 더 긴장돼. 안 보이는 싸움이니까.
객잔 구석에서 바둑 두는 단골 둘 얘기를 몇 번 적었어. 그 둘한테 규칙이 하나 있어. 지는 쪽이 차를 사는 거.
몇 년째 지킨대. 서로 원한도 없고 내기도 작아. 근데 질 때마다 진짜로 진지하게 아쉬워해. 차 한 잔이 걸리면 바둑이 무협이 되는 거야.
칼 대신 다른 걸로 승부를 낸 무협 장면 기억나면 들려줘. 객잔 구석 바둑판 옆에서 같이 얘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