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를 열자 다른 원두와 확연히 다른 냄새가 났어요. 상한 줄 알고 다시 확인했던 첫 봉지였어요.
이 원두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어요.
예전에 인도에서 유럽까지 커피를 배로 실어 날랐어요. 몇 달이 걸리는 길이었죠. 그동안 습한 바닷바람을 계속 맞으면서 생두가 변했어요. 색이 옅어지고 산미가 사라지고 묵직해졌고요.
그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었어요. 나중에 배가 빨라져서 그런 변화가 안 생기자, 일부러 습한 바람에 노출시키는 방식을 만들었어요. 그게 몬순 가공이에요.
이 원두의 성격이 여기서 정해져요.
인도네시아 만델링이랑 비슷한 자리인데, 이쪽이 더 극단적이에요. 산미를 싫어하시는 분한테는 답이 될 수 있어요.
대신 향이 화려한 커피를 좋아하시면 전혀 안 맞아요. 호불호가 확실히 갈려요.
봉지를 열어보시면 바로 아세요.
색이 누렇거나 옅은 회색빛이에요. 다른 생두처럼 초록빛이 아니에요. 크기도 부풀어 있고요. 습기를 머금으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처음 보시면 오래된 원두인가 싶으실 텐데, 그게 정상이에요. 저도 처음에 판매처에 물어봤어요.
이 원두를 쓰는 자리가 여기예요.
산미가 없고 바디가 무거워서 우유에 전혀 안 묻혀요. 진한 라떼를 만들고 싶으실 때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와 함께 후보가 돼요.
에스프레소 배합에 조금 섞으면 크레마가 두꺼워지고 뒷맛이 길어져요. 저희도 겨울 블렌드에 조금 넣어요.
산미가 싫다고 하시는 분한테 드릴 원두가 몇 개 없는데, 이건 그중 하나예요.
진하게 볶은 걸로, 우유를 넣어 드셔보시는 걸 권해드려요.
블랙으로 드셔도 되는데 처음에는 낯설 수 있어요. 흙 같다는 말이 그대로 느껴지거든요. 우유를 넣으면 그 결이 부드럽게 정리돼요.
산미가 아예 싫으시면 한 번 드셔보세요. 그 반대편에 있는 원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