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모시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신청은 몇 분 만에 마감됐고, 끝나고 사인을 받으려는 줄이 길게 섰죠.
그날 그 작가의 책 대출은 두 권이었습니다. 저는 그 숫자를 며칠 생각했죠.
나가시는 분들께 어땠는지 여쭤봤습니다. 대답이 대체로 비슷하더군요.
좋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았는지 물으면 책 얘기가 아니라 그 사람 얘기가 나옵니다. 목소리가 생각과 달랐다거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거나, 웃는 게 좋았다거나.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글만 읽으면 그 문장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안 잡힙니다. 그런데 말하는 걸 한 번 보고 나면 문장에 목소리가 붙습니다. 같은 문장인데 읽는 속도가 달라지죠.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그때부터 구분이 됩니다.
그러니 작가를 보러 오는 게 책을 안 읽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읽기 위한 준비인 경우가 많더군요.
한쪽만 말씀드리는 건 공정하지 않겠죠. 걸리는 대목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날 대출이 두 권이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사인은 받으셨는데 책은 안 빌려 가신 겁니다. 저는 그걸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만난 것으로 읽은 셈이 되는 자리가 있다는 건 봅니다.
사인이 든 책을 사서 안 읽고 꽂아두는 경우도 그렇고요. 그건 책이라기보다 그날의 기념품에 가깝죠.
들리는 이유는 몇 가지입니다.
읽을 것이 너무 많아져서 무엇을 읽을지 정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사람을 보고 정하면 그 고민이 줄죠.
그리고 혼자 읽는 일에 같이 있는 시간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강연장에서 옆자리와 아무 말도 안 하지만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그게 필요한 분들이 계시더군요.
우리는 문장에 설득되기 전에 사람에게 설득된다. 그것이 힘이면서 또한 위험이다.
그래서 저희는 이 자리를 계속 엽니다. 다만 하나를 붙여두려고 합니다.
강연장 입구에 그 작가의 책을 놓아둡니다. 끝나고 나가시는 길에 집으실 수 있게요. 지난번에는 그날 대출이 열 몇 권이었습니다. 책을 손 닿는 데 두는 것만으로 달라지더군요.
사람을 보고 나면 문장이 다르게 들립니다. 그 뒤에 책이 손에 잡히느냐가 이 자리의 값을 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저희가 조금은 도울 수 있는 일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