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출근길이 지겹다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이 대목을 읽은 다음 날부터, 버스 맨 뒷자리 창으로만 바깥을 보신다고 하더군요. 같은 길인데 영화 같아요, 하며 웃으셨습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의 한 짧은 글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답하죠. 예술가에게서 배우라고요.
예술가들은 사물이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법을 안다는 겁니다. 니체는 그 방법들을 하나씩 늘어놓습니다.
멀어져서 보기. 가까이서는 흠만 보이던 것이 한 걸음 물러나면 다르게 보입니다. 일부만 보기. 전체를 다 보려 하지 않고, 한 부분만 떼어서 보는 거죠. 모퉁이를 돌아서 보기. 늘 보던 정면 말고, 비스듬한 단면으로요. 다른 빛 아래서 보기. 색유리를 통해서, 혹은 저녁노을 빛 아래서요.
그 손님이 버스 뒷자리 창으로 본 것도 이 방법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죠. 같은 길을 다른 자리에서 본 겁니다.
이 글에서 니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예술가들의 이 재주를, 예술에서만 쓰지 말고 삶에 쓰자고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우리 삶의 시인이 되고 싶다. 그것도 가장 작고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앞서 니체 정오 뜻을 적으며 작은 것이 가장 좋은 행복을 이룬다고 했는데, 같은 마음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날에도 서는 자리는 바꿀 수 있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 선 자에게 같은 풍경이 새 얼굴을 보인다.
지겨운 것 하나를 다른 자리에서 보십시오. 다른 길, 다른 시간, 다른 창으로요. 전체가 싫으면 한 부분만 보십시오. 앞서 첫인상으로 사람을 정하는 버릇을 적었는데, 사람도 한 부분의 좋은 점부터 보면 달라지더군요. 빛을 바꿔 보십시오. 아침과 저녁에 같은 곳을 걸어 보는 것만으로도요. 작고 일상적인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니체가 그렇게 말했듯이요.
그 손님은 요즘 출근길 사진을 하나씩 찍으신다고 합니다. 매일 같은 길인데 사진이 다 다르다고요. 지겹던 길이 이제 기다려진다고 하시더군요.
세상이 늘 아름답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서는 자리와 비추는 빛을 바꿔 가며, 제 하루를 가장 작은 것부터 아름답게 짓는 시인이 되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