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인물이 나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 앞을 못 봐. 근데 칼이 날아오면 지팡이로 정확히 막아.
다들 놀라.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데 막냐고. 그 노인은 웃기만 해. "들렸으니까."
무협에서 맹인 고수는 대개 엄청나게 세게 그려져.
은신술 기척 얘기를 전에 적었어. 기척을 읽는 게 고수라고. 맹인 고수는 그 기척 읽기의 끝이야.
발소리, 옷 스치는 소리, 숨소리, 칼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눈이 보이는 사람은 그걸 흘려듣지만, 맹인 고수는 그 소리로 세상을 그려. 새벽 안개 얘기할 때 안 보이면 귀로 싸운다고 했잖아. 맹인 고수는 늘 안개 속에 있는 셈인데, 그게 오히려 무기가 된 거야.
맹인 고수의 또 다른 강점은 속지 않는다는 거야.
허초 얘기를 전에 적었어. 가짜 수가 진짜보다 중요하다고. 근데 허초는 눈을 속이는 수야. 맹인 고수한텐 안 통해. 환술도 마찬가지고. 눈으로 보여주는 건 다 소용없지.
그래서 무협에서 맹인 고수랑 싸우는 상대는 자기가 쓰던 수가 하나도 안 먹히는 경험을 해.
잘 쓴 무협은 맹인 고수를 불쌍하게만 그리지 않아.
외팔 검객 얘기 했을 때 잃은 게 새 무기가 된다고 했었지. 맹인 고수도 그래. 눈을 잃었지만 그 덕에 다른 감각이 열렸어. 그리고 대개 그 인물은 마음이 깊어.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으니까 사람을 제대로 봐.
객잔에 눈이 어두운 노인 손님이 가끔 와. 지팡이를 짚고.
한 번은 문 방울이 울리자마자 그 노인이 들어온 사람 이름을 불렀어. 단골 하나였지. 다들 놀랐어.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그러더라. 문 여는 소리가 다 다르대. 그 사람은 늘 문을 반만 연대.
보지 않고도 다 알던 인물 기억나면 들려줘. 그런 인물은 늘 조용한데 오래 남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