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뜸해진 옛 동업자가 어려울 때 돈을 보태주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만나자는 말에는 선뜻 답하지 못하셨다고요. 그 분은 정 때문에 도왔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이사 간 옛 이웃 할머니가 생각나 김치 담근 날마다 한 통씩 택배로 보내신답니다. 그분은 의리라고 하셨고요. 두 분의 이름을 서로 바꾸면 정확해집니다.
의리와 정은 둘 다 사람 사이가 쉽게 끊어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힘입니다.
어려울 때 돕고, 연락이 뜸해도 마음에 두고, 손해를 보더라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붙잡는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의리는 함께한 사이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것이고, 정은 함께한 시간이 쌓여 생긴 마음이 그 사람에게 끌리는 것입니다.
의리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함께 일했던 사이니까, 어려울 때 모른 척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의리는 마음이 식어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돈은 보태면서 만나는 것은 망설였던 그 분이 그랬습니다. 의리는 감정보다 약속에 가깝습니다.
의리와 도리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정에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도 됩니다.
할머니에게 김치를 보낼 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 김치를 담글 때마다 그분 얼굴이 떠오르죠. 오래 이웃으로 지낸 시간이 마음을 만들어 둔 겁니다. 그래서 정은 시키지 않아도 손이 갑니다.
애정과 정의 차이도 전에 다뤘습니다. 거기서는 마음이 먼저냐 시간이 먼저냐로 갈랐고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의리를 정이라고 부르시면 만나기 망설여지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게 됩니다. 마음이 아니라 도리로 움직였다면 망설임도 자연스럽겠지요.
의리라면 지킬 선이 어디까지인지 정해두시면 됩니다. 도리는 끝이 있어야 오래 갑니다.
정이라면 그 마음을 지금처럼 전하시면 됩니다. 김치 한 통이 그 마음의 크기에 맞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사람 사이를 붙잡는 것은 같습니다. 해야 해서인지 마음이 가서인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