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좋으냐고 여쭤봤더니 한참 있다가 오래 봤다고만 하시더군요.
답을 피하신 게 아닙니다. 그 말이 실제 답이었습니다. 다만 그 답이 가리키는 이름이 애정은 아니었죠.
애정과 정은 둘 다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둘 다 잘 지내기를 바라고, 둘 다 없어지면 허전합니다. 그래서 하나로 부르시는데, 시작한 자리가 다릅니다.
애정은 마음에서 시작하고 정은 시간에서 쌓입니다.
애정은 그 사람이 좋아서 생긴 마음입니다.
무엇이 좋은지 댈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 사람을 골랐고, 그래서 가까워졌죠. 순서가 마음이 먼저입니다.
애정은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이라 이유를 보면 크기도 재집니다.
정은 오래 같이 있어서 생긴 마음입니다.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고, 같은 것을 겪었고, 그래서 붙은 겁니다. 순서가 시간이 먼저지요.
정은 이유를 못 댑니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답이 안 나오고 오래 봤다는 말만 나오더군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처음부터 좋으셨습니까, 오래 보다 보니 그렇게 되셨습니까?
둘 다인 경우도 많습니다. 애정으로 시작해서 정이 쌓인 관계가 제일 단단하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애정은 없는데 정만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좋지도 않은데 못 떠나는 자리요. 그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정은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쌓이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애정이라고 부를 때 생깁니다. 그러면 왜 안 좋은데 못 떠나는지가 설명이 안 되죠. 그래서 자기 마음을 의심하게 됩니다.
정이라고 정확히 부르면 설명이 됩니다. 오래 붙어 있던 것이 떨어질 때 아픈 것은 당연하니까요.
애정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정만 남으셨으면 할 일은 억지로 끊는 것도 계속 붙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관계에서 지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적어보는 것입니다.
쌓인 시간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시간이 앞으로도 이어져야 하는지는 다른 계산이지요. 그 계산을 해보시고 정하면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아끼는 것은 같습니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