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하신 책이 들어왔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별로일 수도 있죠.
기대하고 오셨다가 아니면 실망하실까 봐 미리 접어두신 겁니다. 저도 자주 하는 일이라 그 문장이 눈에 밟혔습니다.
먼저 이건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맞습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습니다.
기대가 낮으면 안 됐을 때 덜 흔들리죠. 그리고 됐을 때는 뜻밖의 이득처럼 느껴집니다. 계산으로만 보면 손해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건 어리석은 습관이 아니라 여러 번 실망해본 사람이 배운 방법입니다. 그 점부터 인정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기대가 실망만 막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설렙니다. 그 기다림 자체가 좋은 것인데, 미리 낮추면 그것도 같이 없어지죠. 결과가 좋아도 좋아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잘 못 누립니다.
실망은 결과가 나쁠 때만 오는데, 기대를 낮추는 값은 결과가 나오기 전 내내 나갑니다.
한 번 두 번은 방어인데, 이게 굳으면 다르게 작동하더군요.
바라지 않으니 시도도 안 하게 됩니다. 될 것 같지 않다고 미리 정해두면 그 일에 힘을 안 쓰게 되고, 그러면 실제로 안 되죠.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근거가 됩니다. 낮춘 기대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구조가 되는 겁니다.
없애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나눕니다.
계획은 안 되는 쪽을 대비하십시오. 안 됐을 때 뭘 할지 미리 정해두시면 됩니다. 그건 현실적인 일입니다.
마음까지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기대하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다른 일이죠. 대비를 해뒀으면 마음은 편하게 두셔도 됩니다.
이 둘을 붙여두니까 문제였던 겁니다. 안 될 때를 대비하려고 마음까지 접어버리는 거죠.
대비는 손이 하는 일이고 기대는 마음이 하는 일이다. 둘을 같은 자리에 두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먹는다.
작게 해볼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기대된다고 말해보는 것입니다.
혼자 생각만 하면 미리 접기 쉬운데, 입 밖으로 내면 잘 안 접힙니다. 좀 창피할 수 있는데 그 창피함이 사실은 기대를 지켜주는 쪽이더군요.
별로일 수도 있죠, 하셨던 그분은 그 책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반납하시면서 좋았다고 두 번 말씀하셨죠.
저는 그 두 번이 반가웠습니다. 미리 접으셨던 만큼 늦게 오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