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진지한 얼굴로 물으셨습니다.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 중인데, 니체가 위험하게 살라고 했다던데 그게 맞느냐고요. 등을 떠밀어 줄 말을 찾고 계신 것 같더군요.
니체가 그 말을 한 건 맞습니다. 다만 앞뒤를 함께 읽어야 하죠.
이 말은 『즐거운 학문』 제4부에 나오죠. 니체는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씁니다.
존재에서 가장 큰 결실과 가장 큰 기쁨을 거두는 비밀은 이것이다. 위험하게 살아라! 너희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 기슭에 세워라! 너희의 배를 아직 탐험하지 않은 바다로 보내라!
이 대목은 몸을 내던지라는 말로 읽히기 쉽죠. 하지만 니체가 이 글에서 기다린 사람들은 인식하는 자들, 그러니까 생각하고 묻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니체가 말한 위험은 익숙한 생각에 머물지 않는 위험에 가깝습니다. 안전한 정답에 기대지 말고,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을 물으라는 거죠. 화산 기슭이란 편안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자리를 가리키는 비유일 겁니다.
무모함은 앞을 보지 않습니다. 위험하게 산다는 건 오히려 위험을 알고 그 앞에 서는 일이죠. 무모함은 남에게 보이려 합니다. 니체가 말한 탐험은 남의 박수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무모함은 한 번에 다 겁니다. 미지의 바다로 보내는 건 배 한 척이지, 항구 전체가 아니죠.
항구에 머문 배는 썩지 않지만 아무 데도 닿지 않는다. 한 척은 바다로 보내라. 돌아오지 않아도 그 배는 바다를 알고 간 것이다.
익숙한 생각 하나를 의심해 보십시오. "나는 원래 이것밖에 못 해" 같은 것들이요. 작은 배부터 띄우십시오. 큰 결정 전에 작게 시험해 볼 수 있는 길이 대개 있더군요. 항구로 돌아올 길도 알아 두십시오. 위험을 아는 사람은 돌아오는 길도 그려 두겠죠. 그건 비겁함이 아니라 항해술이죠.
그 손님께 이 대목 전체를 보여드렸습니다. 한참 읽으시더니 말씀하셨죠. 당장 그만두라는 얘기는 아니네요. 대신 퇴근 후에 해 보고 싶던 일을 먼저 시작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배 한 척부터요.
위험하게 산다는 말은 저를 떠밀기보다 깨우는 말일 겁니다. 저는 익숙한 항구에 머물되, 미지의 바다로 보낼 배 한 척은 늘 제 손으로 띄워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