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말을 들으시고 웃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상대는 그대로 지나갔죠.
그런데 그분은 그 뒤로 삼십 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계셨죠. 아무것도 안 하시고요.
불편한 말이 들어오면 우리에게는 몇 초가 주어집니다. 그 안에 뭔가를 해야 하죠.
따지려면 문장을 만들어야 하고, 화를 내려면 자리를 감당해야 합니다. 웃는 건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잘 듣죠. 그 자리는 넘어가고 상대도 안 불편해하죠. 앞서 말이 늦게 떠오르는 성격 얘기를 적었는데, 그런 사람에게 웃음은 시간을 버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자리가 넘어간 것이지 그 말이 없어진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웃어넘긴 말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돌아옵니다. 그때는 상대도 없고 자리도 지났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죠. 그래서 머릿속으로만 몇 번을 다시 겪게 됩니다.
그 삼십 분이 그런 시간이었겠죠.
한 가지 더 있죠. 웃으면 상대는 괜찮았다고 기록합니다.
악의가 없던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반응이 없었으니 문제가 없었다고 보고, 다음에도 같은 말을 하죠. 그러면 같은 일이 반복되고, 반복되면 말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앞서 섭섭함이 야속함으로 굳는다는 얘기를 다른 자리에서 적은 적이 있는데 비슷한 구조입니다. 말할 수 있는 동안 말하는 게 쉽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따지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건 다른 종류의 피로죠.
다만 웃은 다음에 하나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이건 넘어간 건가, 미뤄둔 건가. 넘어갔으면 그걸로 끝이고, 미뤄뒀으면 그 말은 어딘가에 남습니다.
남는 쪽이면 방법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못 하셨다고 끝난 게 아니죠.
며칠 뒤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번에 하신 말씀이 좀 걸렸다고요. 늦었다고 이상하게 안 봅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서 꺼내면 감정이 빠져 있어 상대도 방어를 덜 하더군요.
웃음은 문을 닫는 방법이지 문제를 치우는 방법이 아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 여쭤봤죠. 그럴 자리가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이 말씀은 드리고 싶었습니다. 웃으셨다고 괜찮았던 건 아니라고요. 그 삼십 분이 그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