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첫 화에 나온 옛날 전쟁 얘기를 건너뛰더라고. 지루하다면서.
그러다 한참 뒤에 다시 앞으로 돌아왔어. 인물 관계가 안 잡혀서. 나는 그걸 보고 좀 웃었어. 나도 똑같이 했거든.
정파랑 마교가 크게 붙었던 전쟁이야. 작품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른데 하는 일은 같아.
대개 이야기가 시작되기 몇십 년 전에 끝나 있어. 지금 나오는 인물들은 그 전쟁을 겪었거나, 겪은 사람 밑에서 자랐거나, 그 뒷정리 속에서 살고 있지.
즉 이미 끝난 사건이야. 그런데 왜 첫 화에 나오냐.
이게 첫 번째 쓸모야. 무협은 시작할 때 이미 판이 짜여 있어야 해.
어느 문파가 세고, 누구랑 누구가 사이가 나쁘고, 왜 마교는 저 바깥에 있고. 이걸 하나씩 설명하면 지루하잖아. 전쟁 하나로 한 번에 깔아버리는 거야.
그 전쟁에서 누가 이겼으니 지금 무림맹이 저 모양이고, 누가 크게 다쳤으니 저 문파가 힘을 잃었고. 한 사건이 지도를 통째로 그려줘.
두 번째 쓸모가 더 커. 지금 인물들이 왜 서로를 미워하는지를 여기서 가져와.
무협에서 원한은 이야기의 연료잖아. 그런데 등장인물끼리 처음부터 미워하려면 이유가 필요해. 그 이유를 매번 새로 만들면 번거롭지.
전쟁이 있으면 그게 한 번에 해결돼. 그때 누가 누구를 죽였고, 누가 배신했고, 누가 도망쳤어. 다들 그 빚을 물려받은 상태로 시작하는 거야. 멸문지화가 첫 화에 나오는 것도 같은 계산이지.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해. 무협에서 옛날 전쟁이 나오면 그건 또 일어난다는 예고야.
한 번 붙었으면 다시 붙을 수 있잖아. 그래서 이야기 내내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해. 또 그때처럼 되는 거 아니냐고. 실제로 대개 후반부에 다시 붙어.
그러니까 첫 화의 그 지루한 대목은 마지막 화의 예고편인 셈이야. 건너뛰면 마지막에 왜 다들 그렇게 떠는지가 안 와닿아.
여기가 잘 쓴 작품이랑 아닌 작품이 갈리는 자리야.
좋은 작품은 그 전쟁을 다 안 알려줘. 누가 이겼는지 정도만 말하고 세부는 비워둬. 그리고 인물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있게 해. 어떤 놈은 영웅담으로 말하고 어떤 놈은 치욕으로 말하지.
그러면 독자가 뭐가 진짜인지 궁금해져. 비워둔 자리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거야. 무공 비급이 항상 반쪽인 것도 같은 수법이잖아.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여기 떨어진 놈이라 이런 대목이 제일 힘들었어. 이름이 우르르 나오니까.
그래서 요령을 하나 만들었어. 다 읽지 말고 이름 세 개만 챙겨. 그때 이긴 쪽 하나, 진 쪽 하나, 배신했다는 놈 하나. 그 셋만 머리에 넣어두면 뒤에서 나올 때 걸려.
나머지는 나올 때마다 붙이면 돼. 인물 이름은 외우지 말고 자리로 기억하라고 내가 늘 말하잖아. 여기서도 똑같아.
어느 대목부터 꼬였는지 말해봐. 순서부터 정리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