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된 동료를 축하하시고 돌아서서 그 사람 흠을 떠올리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축하한 것도 진심이었을 겁니다. 다만 그 뒤에 온 것에는 다른 이름이 붙더군요.
질투와 시기는 둘 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태입니다.
둘 다 그 사람 생각이 나고, 둘 다 스스로 부끄러워집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질투와 부러움도 이 근처에서 갈렸죠. 그러면 이 둘은 무엇이 갈릴까요?
내가 실제로 잃는 것이 있느냐입니다.
질투는 그 사람이 가져가면 내 것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옵니다.
자리가 하나뿐이거나, 관심이 나뉘거나, 기회가 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질투에는 근거가 있죠. 실제로 걸린 것이 있으니까요.
질투는 그 사람이 나빠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구조가 그래서 생깁니다.
시기는 내가 잃는 것이 없는데도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이 싫은 상태입니다.
그 사람이 잘돼도 내 것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도 불편하죠. 그래서 시기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시기가 특별히 나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쪽이 비어 있으면 누구에게나 오더군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분이 잘돼서 내가 잃는 것이 실제로 있습니까?
같은 자리를 두고 겨루셨으면 앞쪽이고, 다른 분야인데 불편하셨으면 뒤쪽이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질투는 그 자리를 봅니다. 내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시기는 그 사람을 봅니다. 그 사람이 덜 대단해 보여야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래서 흠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사람의 성취를 깎으면 내 쪽이 올라오는 것 같거든요.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올라오고요.
질투 쪽이면 할 일은 그 자리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시기 쪽이면 할 일은 그 사람을 덜 보는 게 아닙니다. 내 쪽에서 최근에 해낸 것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대로 남의 성취가 내 잔고를 깎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 잔고가 안 보이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불편한 것은 같습니다. 실제로 잃는 것이 있는지만 셈해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