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에서 노고수가 등장하면 묘사가 거의 같아. 허리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 그리고 그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해.
"허허, 젊은이." 이 한마디면 독자는 알아. 이 사람 고수다.
나는 처음에 이게 너무 뻔한 묘사인 줄 알았어. 근데 이유가 있더라.
흰 수염은 시간이야.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거지.
무협에서 시간은 곧 힘이야. 폐관수련은 왜 삼 년이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무협은 시간을 돈처럼 쓴다고. 흰 수염은 그 시간을 몸에 걸고 다니는 표시야. 수염이 길수록 쌓은 세월이 길고, 쌓은 세월이 길수록 내공이 깊다는 거지.
수염을 쓰다듬는 동작에도 뜻이 있어. 여유야.
급한 사람은 수염을 쓰다듬을 틈이 없어. 싸움이 코앞인데 수염을 만지며 웃는다는 건 이 정도는 걱정 안 한다는 뜻이야. 검집 얘기할 때 칼을 안 뽑는 고수가 더 무섭다고 했는데, 수염 쓰다듬는 노인도 같은 결이야.
반로환동 얘기를 전에 적었어. 늙은 고수가 젊어지는 거. 그건 수염이 없어지는 이야기야.
흰 수염 노고수는 그 반대야. 늙음을 숨기지 않아. 오히려 드러내. 그래서 무협에서 흰 수염은 나이를 받아들인 고수의 표시이기도 해. 젊어지려 애쓰지 않고, 쌓인 시간을 그대로 두는 사람.
객잔에 수염 기른 노인 손님이 있어. 흰 수염이 가슴께까지 와. 그 손님은 국을 먹을 때마다 한 손으로 수염을 쥐고 먹어. 국에 빠지지 않게.
어느 날 아이 손님이 그걸 보고 따라 했어. 수염도 없는데 턱을 쥐고 국을 먹더라. 다들 웃었지. 노인 손님도 웃으면서 수염을 쓰다듬었어. "허허." 진짜 무협 노고수 같았어.
수염 쓰다듬는 노고수 중에 기억나는 인물 있으면 들려줘. 그 한마디가 뭐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