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실 구석에서 책을 세워 얼굴을 가리고 계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어깨만 조금 움직이더군요.
저는 그쪽으로 안 갔죠. 가지 않는 것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울음이 올라올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우는 게 아닙니다. 누가 보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그 순간 감정은 뒤로 밀리고 상황 관리가 앞에 옵니다. 화장실을 찾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말을 돌리거나. 그러다 보면 울 타이밍이 지나가고 그 감정은 안에 남습니다.
그러니 참는 건 감정이 약해서가 아니라 감정보다 자리를 먼저 계산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우는 걸 부끄럽게 여기게 된 데는 대개 장면이 하나씩 있습니다.
울었을 때 곤란해하던 얼굴을 본 적이 있거나, 그만 울라는 말을 들었거나, 운 뒤에 그 일이 회자된 적이 있거나. 한 번이면 충분하더군요. 그다음부터는 몸이 알아서 막습니다.
여기가 제가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대목입니다. 참는 것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올라오는 것을 누르는 데 실제로 힘이 들죠. 그래서 잘 참고 나온 날은 유난히 피곤합니다. 그날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지쳤다면, 안에서 그 일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이걸 알고 계시는 것과 모르시는 것은 다릅니다. 모르면 이유 없이 지치는 사람이 되고, 알면 오늘 힘을 쓴 사람이 되니까요.
울어야 풀린다는 말을 저는 그대로 옮기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더군요.
울고 나서 개운한 분이 있고, 울고 나서 더 무너지는 분도 있습니다. 우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다만 안 우는 쪽을 택하셨다면 그 감정을 다른 어딘가로는 내보내셔야 합니다. 참는 것은 처리가 아니라 미루는 것이니까요.
눌러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엉뚱한 자리에서 값을 청구할 뿐이다.
제가 아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겁니다. 울어도 되는 자리를 미리 정해두는 것.
차 안이나, 샤워하는 동안이나, 걸어서 돌아오는 길 같은 자리요. 사람 앞에서 안 울기로 했다면 대신 안 우는 시간을 무한정 늘리지는 마시라는 뜻입니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면 그 순간까지는 버티기가 오히려 쉽더군요.
혹시 그런 자리를 보시게 되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괜찮냐고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질문은 대개 대답을 요구해서 참던 사람을 더 곤란하게 만듭니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거나, 물 한 잔을 두고 물러나는 편이 낫더군요.
그날 그분은 한참 뒤에 얼굴을 정리하고 나가셨습니다. 저는 인사만 했습니다. 그게 그 자리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전부였고, 아마 필요한 전부이기도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