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손님 하나가 벽에 걸린 달력을 보더니 그러더라. 곧 한로라고. 찬 이슬이 내리는 때래. 이십사절기 중 하나라고 하더라.
나는 절기를 잘 몰라. 근데 그 말 듣고 다음 날 새벽에 뒷마당에 나가봤어. 장작 위에 이슬이 하얗게 맺혀 있었어. 손으로 만져보니 차가웠어.
그날 처음으로 겉옷을 꺼냈지.
그 이슬 보면서 무협 장면이 떠올랐어. 무협 수련 장면은 대개 새벽이야.
해 뜨기 전에 일어나서 마당에서 검을 휘둘러. 풀에 이슬이 맺혀 있고, 옷자락이 젖고, 입김이 나와. 사부는 처마 밑에서 그걸 지켜보고.
나는 처음에 이게 그냥 분위기용인 줄 알았어. 근데 왜 하필 새벽일까.
무협에선 새벽 기운이 제일 맑다고 해. 하루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 기운이 섞이기 전이라는 거지.
그래서 내공 닦는 사람은 새벽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외공 닦는 사람은 새벽에 몸을 움직여. 조식 얘기를 전에 적었어. 숨 돌리는 게 수련이라고. 그 수련이 제일 잘 되는 시간이 새벽이래.
그리고 찬 기운이 정신을 깨워. 이슬 맞으면서 졸 수는 없잖아.
잘 쓴 무협은 이슬을 시간 표시로 써.
어제 이슬이 맺힐 때 시작한 수련이 오늘 이슬이 맺힐 때까지 이어졌다. 이런 문장 하나로 밤을 꼬박 새웠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폐관수련이 삼 년이라는 얘기 했었는데, 무협은 이렇게 작은 걸로도 시간을 세.
나는 수련은 안 해. 근데 객잔 주인도 새벽에 일어나. 솥에 불 넣고, 물 길어 오고, 마당 쓸고.
한로 지나면 새벽이 더 차가워질 거야. 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는 이슬 맺힌 장작을 보면서 무협 사부가 된 기분이라도 내보려고.
이슬 내리는 새벽에 깨어 있으면 객잔 생각해. 나도 그 시간엔 솥에 불 넣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