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손님 둘이 한글날 얘기를 하더라. 곧 시월 구일이라고. 뉴스에서 우리말 다듬기 얘기가 나왔다고 했어.
한 손님이 말했어. 요즘 말엔 외래어가 너무 많다고. 다른 손님이 받았지. "그럼 무협은 어떡해."
거기서부터 판이 커졌어.
생각해보니 맞아. 무협 용어는 거의 다 한자어야. 내공, 경공, 초식, 심법, 점혈, 주화입마.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던 채로 떨어졌잖아. 그때 제일 막힌 게 이 말들이었어. 무협 입문 얘기할 때 이름이 많아서 막힌다고 했는데, 그 이름들이 전부 네 글자 한자어라서 더 그랬어.
그 자리에서 손님들이 놀이를 시작했어. 무협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경공은 날쌘걸음이 됐어. 다들 웃었지. 내공은 속힘, 점혈은 혈 누르기, 주화입마는 한 손님이 "기운 꼬임"이라고 했어.
근데 하다 보니까 이상해. 뜻은 통하는데 맛이 안 나. 날쌘걸음으로 지붕을 넘으면 무협이 아니라 동네 뜀박질 같거든.
손님 하나가 이런 말을 했어. 무협 한자어는 어려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멀리 있으라고 있는 거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무협은 지금 여기가 아닌 세계잖아. 한자어가 그 거리를 만들어. 네 글자짜리 초식 이름이 사용설명서라고 전에 적었는데, 그 설명서가 다른 세계의 말이라서 몰입이 되는 거지.
그렇다고 우리말 놀이가 쓸모없는 건 아니야.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날쌘걸음이 더 빨리 들어가. 뜻을 먼저 알고 나서 경공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때부터 안 막혀.
그래서 나는 객잔에서 둘 다 써. 처음 온 손님한테는 우리말로 먼저 말해주고, 그다음에 진짜 이름을 알려줘.
한글날이라고 한자어를 버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알아듣게 해주는 게 먼저야.
무협 용어 하나를 네 말로 바꿔서 들려줘. 제일 그럴듯한 건 객잔 벽에 적어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