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손님 하나가 신나서 들어왔지. 아이 학예회에 다녀왔대. 요즘 가을 학예회 철이라 학교마다 공연을 한대.
근데 그 아이 반이 무협 연극을 했대. 칼 대신 신문지 말아서 들고, 망토 대신 담요 두르고. 손님이 휴대폰 영상을 보여주는데 다들 웃음이 터졌고.
영상 속 아이들이 진지하더라고. 신문지 칼을 휘두르며 "이놈!" 하고 외치고, 쓰러질 때는 천천히 바닥에 누워.
한 아이는 경공 하는 척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가 선생님한테 혼났대. 다른 아이는 사자후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가 관객석이 다 웃었대.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았지. 아이들이 상상한 강호가 그대로 무대에 있었거든.
그 연극에 객잔 주인 역도 있었대. 그 손님 아이가 맡았대.
대사는 딱 한 줄. "어서 오시오, 방 있소." 그 한 줄 때문에 아이가 며칠을 연습했대. 그리고 그날 객잔에 같이 와서 나한테 직접 그 대사를 보여줬어. 문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나는 박수를 쳤지. 진짜 객잔 주인보다 잘했거든.
무협 조연 얘기를 전에 적었어. 주인공이 안 맞으면 조연으로 갈아타도 된다고. 아이 연극에서도 그랬어. 대사 한 줄짜리 객잔 주인이 제일 기억에 남는 역이 된 거야.
객잔 주인 고수 얘기할 때 무협 객잔 주인이 숨은 고수인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그 아이는 숨은 고수까진 아니었지. 근데 객잔 문 앞을 지키는 그 자세만큼은 진짜였어.
그 아이가 가고 나서 생각했어. 나는 매일 손님을 맞는데 대사가 없어. 그냥 "왔어?" 정도거든.
아이처럼 한 줄을 정해볼까 싶었지. 근데 손님들이 그러더라. "왔어?"가 제일 좋대. 노포 폐업 얘기할 때 음식보다 인사가 남는다고 했었지. 나는 그 한 줄로 충분한가 봐.
어릴 때 학예회에서 맡았던 역 기억나면 들려줘. 객잔 주인 역이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