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자리에서 한 시간쯤 앉아 계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책은 안 펴셨죠.
나가시면서 그러시더군요. 시간만 버렸다고요. 저는 그 한 시간이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쉬는 걸 미안해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쉴 자격을 먼저 따집니다.
오늘 한 일이 충분한지, 이만큼 쉬어도 되는지를 계산하시죠. 그러면 쉬는 시간에도 계산이 돌아가니까 실제로는 안 쉬어집니다.
앞서 바쁘다는 말이 습관이 된 얘기를 적었는데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한가하다고 말하기가 꺼려지는 것과, 쉬는 게 미안한 것은 뿌리가 하나입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하루를 한 일의 양으로만 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했으면 좋은 날이고 안 했으면 버린 날이 되죠. 그 셈법에서 쉰 날은 자동으로 손해로 기록됩니다. 다른 칸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쉬는 건 안 하는 게 아니라 다음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그게 셈에 안 들어가 있는 겁니다.
재밌는 건, 쉬는 게 미안한 분들이 쉴 때도 뭔가를 하신다는 점입니다.
영상을 보거나, 정리를 하거나, 읽을 것을 찾으시죠. 뭔가 하고 있으면 덜 미안하니까요. 그래서 쉬었는데 안 쉬어진 상태로 끝납니다.
그 한 시간 동안 아무 책도 안 펴고 계셨던 건 사실 어려운 일을 하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방법이랄 것도 없습니다. 하나만 정해두시면 됩니다.
쉬는 데 자격을 안 따지기로 하는 것. 오늘 한 일이 적어도 쉬시면 됩니다. 그 셈을 안 하기로 정해두면 그 시간이 실제로 쉬는 시간이 되죠.
그리고 쉰 시간을 기록에 남기십시오. 오늘 뭐 했냐는 물음에 쉬었다고 답할 수 있으면 그건 빈칸이 아니라 한 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비어 있는 날이 아니다. 그날이 있어서 다음 날이 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앞서 도서관에 책 안 빌리고 오셔도 된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소파와 창가 자리는 읽으라고만 놓은 게 아닙니다. 값을 안 내고 앉아 있을 자리가 필요해서 놓은 거죠.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보내시는 건 그 자리의 쓰임대로 쓰신 겁니다.
시간만 버렸다고 하셨던 그분은 그 뒤로도 가끔 오십니다. 요즘은 나가시면서 그 말씀을 안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