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책이라며 기증하러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안쪽에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죠.
준 사람이 정성껏 쓴 글씨였습니다. 그래서 못 버리셨고, 그래서 여기까지 들고 오신 거고요.
앞서 책 권할 때 기준을 적은 적이 있는데, 선물은 그것과 다른 자리입니다.
권하는 건 안 읽어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납니다. 받는 쪽이 고르고, 안 골라도 그건 선택이죠.
선물은 이미 손에 들어와 있습니다. 거절할 수가 없고, 안 읽으면 미안해지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성의가 클수록 그 부담도 커지고요.
그래서 같은 책이라도 권하면 가볍고 주면 무겁습니다.
이름을 적으면. 앞쪽에 글씨를 남기면 그 책은 중고로도 못 넘기고 남 주기도 어려워집니다. 오래 남으라고 적는 건데 결과적으로 처분할 길을 다 막죠.
읽었는지 물으면. 이게 제일 큽니다. 한 번만 물어도 그때부터 숙제가 됩니다.
두꺼우면. 앞서 두꺼운 책 얘기를 적었듯 두께 자체가 시작을 막습니다. 선물로는 특히 그렇죠.
말리려는 게 아니라 방식을 좀 바꾸시면 됩니다.
얇은 걸로 고르십시오.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두께면 손이 나갑니다.
왜 이 책인지 한 줄만 붙이십시오. 책 안이 아니라 쪽지에요. 나중에 떼어낼 수 있게요.
안 맞으면 덮으셔도 된다고 말해두십시오. 이 한마디가 선물을 권함에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상대가 이미 궁금해한 주제로 고르십시오. 내가 좋았던 책이 아니라요. 이건 권할 때와 같은 기준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무슨 책을 좋아하실지 모르겠으면 고르는 일을 넘기셔도 됩니다.
책 상품권이나 서점 기프트카드는 성의가 없어 보일 것 같지만, 받는 쪽에서는 고를 자유가 같이 오는 선물입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이걸 반가워하더군요.
주는 사람의 성의가 받는 사람의 부담이 되는 자리가 있다. 책은 그 자리에 가까이 있다.
그 책은 기증으로 받았습니다. 상태가 좋았고 저희에게 없던 책이었거든요.
다만 이름이 적힌 쪽은 안 지웠습니다. 그건 그분 것이 아니라 준 사람 것이니까요.
주시려면 가볍게 주시면 됩니다. 안 읽어도 된다는 말과 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