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시작이 있어. 주인공이 강가에서 깨어나.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자기 이름도 모르겠어.
근데 누가 칼을 휘두르니까 몸이 저절로 움직여서 막아. 손이 기억하는 거야. 머리는 모르는데.
기억상실 주인공이야. 무협에서 꽤 자주 쓰는 시작이지.
이 설정의 재미는 몸과 머리가 따로 논다는 거야.
무공은 몸에 박혀 있어. 수십 년 닦은 건 기억을 잃어도 안 사라져. 철사장 얘기할 때 매일 반복한 게 쌓여서 손이 바뀐다고 했잖아. 그 손은 기억이 없어도 알아서 움직여.
그래서 기억상실 주인공은 자기도 놀라. 내가 이런 걸 할 줄 알았나? 독자도 같이 놀라고.
기억을 잃으면 정체 자체가 수수께끼가 돼. 이야기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쪽으로 굴러가.
이 무공은 어느 문파 거지? 왜 쫓기고 있었지? 원수는 누구고 은인은 누구지? 은원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기억을 잃으면 장부가 백지가 되는 거야. 받은 은혜도 원한도 기억 안 나.
그래서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이 큰 장면이야. 친하게 지낸 사람이 사실 원수였다거나, 그 반대거나.
잘 쓴 무협은 기억상실을 두 번째 기회로도 써.
예전엔 나쁜 사람이었는데, 기억을 잃고 착하게 살다가 기억이 돌아와. 그러면 고민이 시작돼. 예전의 나로 돌아갈까, 지금의 나로 남을까. 그 고민이 이야기를 깊게 만들어.
이 얘기를 객잔에서 하는데 손님 하나가 웃으면서 그랬어. 객잔 주인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 않냐고. 다들 나를 쳐다봤지.
반은 맞는 말이야.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던 채로 이 세계에 떨어졌으니까. 기억은 있는데 여기서의 과거가 없어. 그래서 기억상실 주인공한테 정이 가.
기억 잃은 인물이 자기를 되찾는 장면 중에 좋았던 거 들려줘. 나도 그런 장면에 좀 약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