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하나가 니체 책을 들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공부가 즐거울 리가 없는데 제목이 왜 이래요? 그러더니 표지를 뒤집어 부제를 찾더군요. 그 질문이 꽤 정확하더군요. 니체도 그 낯섦을 노렸으니까요.
니체는 이 책을 1882년에 처음 냈고, 몇 해 뒤 서문과 한 부를 더 붙여 다시 냈습니다. 앞서 위험하게 살아라와 영원회귀를 적었는데, 두 생각이 모두 이 책에서 처음 나오죠.
제목 옆에는 이탈리아어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라 가야 스치엔차(la gaya scienza)." 중세 남프랑스 음유시인들이 노래를 짓는 기술을 부르던 말에서 왔다고 하죠.
그러니 여기서 "학문"은 딱딱한 공부라기보다, 노래하듯 가볍게 아는 일에 가깝습니다.
니체는 다시 낸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을 회복기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오랜 병과 고통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이 다시 힘을 느끼며 쓴 책이라고요.
그 서문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깊은 고통을 지나온 사람은 더 깊어지고, 더 의심이 많아지지만, 동시에 더 섬세하게 기뻐할 줄 알게 된다고요. 앞서 쉽게 상처받는 성격을 적으며 이 대목을 빌렸었죠.
즐거움이 고통의 반대가 아니라 고통을 지나온 뒤에 오는 것이라는 거죠.
니체에게 즐거운 학문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습니다. 앞서 중력의 영을 적었는데, 그 무거움을 이겨 낸 앎이죠. 정답에 매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진리를 쥐고 굳어 버리는 대신, 계속 묻고 웃으며 나아갑니다. 몸이 함께합니다. 춤추듯, 노래하듯 아는 거죠.
무거운 얼굴로 쥔 진리는 쉽게 굳는다. 웃으며 쥔 진리는 계속 자란다.
그 학생에게 말해 줬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즐겁지 않은 건 당연하다고. 다만 시험이 끝나고 나서 스스로 궁금한 걸 배우게 될 때, 그때 이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라고요.
학생이 웃으며 책을 도로 꽂더군요. 시험 끝나면 빌리러 오겠다고 하더군요.
배움이 늘 즐거울 수는 없겠죠. 그래도 무거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가볍게 아는 기쁨이 올 수 있겠죠. 저는 그 기쁨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궁금한 것 하나를 노래하듯 배워 가며 제 즐거운 학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