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하나가 강시 나오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어. 이건 무협이 아니라 딴 장르 아니냐면서.
무공 얘기 하다가 갑자기 시체가 걸어 나오니까 그럴 만해.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 근데 이게 끼워 넣은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야.
먼저 짚고 갈 게 있어. 무협이 무공만 다루는 장르였던 적이 없어.
기연이 있고 영약이 있고 내공이라는 게 있잖아. 다 사람 몸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야. 처음부터 반쯤은 괴이한 얘기였어. 강시가 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쪽만 안 보고 있었던 거지.
죽은 몸을 움직이게 만든 거야. 스스로 생각은 못 하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여.
무협에서 다루는 방식은 대개 이래.
핵심은 만든 놈이 따로 있다는 거야. 강시 자체가 악당인 경우는 드물어.
여기가 이 설정의 쓸모야. 강시는 싸움을 다르게 만드는 장치야.
무협의 대결은 원래 두 사람이 붙는 거잖아. 눈을 보고 수를 읽고. 그런데 강시는 눈을 봐도 아무것도 안 읽혀. 겁을 줘도 안 물러나고 아파도 안 멈춰. 대화가 안 되는 상대인 거지.
그러면 주인공이 지금까지 쓰던 방식이 안 먹혀. 금강불괴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방식을 바꿔야 해. 대개는 조종하는 놈을 찾아 나서는 쪽으로 이야기가 굴러가.
하나 더 있어. 강시를 만드는 놈은 무협에서 선을 넘은 놈으로 그려져.
죽은 사람을 물건처럼 쓰는 거잖아. 이건 사파도 대개 안 해. 그래서 강시가 나오면 그걸 만든 쪽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 없애야 할 대상이 돼.
즉 명분을 만들어주는 장치이기도 해. 정파랑 사파가 착한 편 나쁜 편이 아니라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그 애매함을 한 번에 정리하고 싶을 때 이걸 쓰는 거야.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재밌어. 강시도 독도 정면으로 안 붙는 방식이야.
독은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들어가고, 강시는 지치지도 않고 밀려와. 둘 다 무림의 기본 규칙인 붙어서 겨루기를 안 지키지.
그런데 대접이 달라. 당가는 정파에 남아 있고 강시 쓰는 놈은 쫓겨나. 차이가 뭐냐면 사람 몸을 재료로 쓰느냐야. 무림이 어디까지 봐주는지가 이 선에 그어져 있는 거지.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여기 떨어진 놈이라 처음엔 이상해 보이는 게 다 새로 끼워 넣은 건 줄 알았어.
반대더라고. 이상해 보이는 건 대개 제일 오래된 거야. 옛날 이야기에서 그대로 넘어온 것들이라 지금 감각이랑 안 맞을 뿐이지.
뜬금없어 보이는 설정 있으면 말해봐. 어디서 왔는지 찾아줄게. 그거 파는 게 제일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