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 두꺼운 전집 앞에 한참 서 계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혼잣말을 하시더군요. 이건 이제 못 읽겠다고요.
책이 어려워서 하신 말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죠. 저는 그 문장이 며칠 남았습니다.
젊을 때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셉니다. 몇 년 했는지, 얼마나 왔는지를 세죠. 그 셈은 늘어나기만 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 방향이 바뀝니다. 남은 시간을 세기 시작하는 겁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셈이죠.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워지는 건 몸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대개 이 전환에서 옵니다. 같은 하루가 쌓이는 것에서 줄어드는 것으로 바뀌니까요.
여기서 한 겹 더 들어가 보죠.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무서운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무서운 건 아직 안 한 것이 있는 채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다 해봤다고 느끼는 사람은 시간이 줄어도 덜 흔들리더군요.
그래서 이 두려움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미뤄둔 것의 목록 길이에 붙어 있습니다. 스무 살에도 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이유가 그겁니다.
이 이야기를 두려움으로만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은 시간을 세기 시작하면 실제로 달라지는 게 있거든요.
고르게 됩니다. 무한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안 고릅니다. 다 할 수 있으니까 지금 안 해도 되죠. 남은 것이 유한하다는 걸 알아야 비로소 무엇을 안 할지 정하게 됩니다.
전집 앞에 서 계셨던 그분은 결국 그 전집 대신 얇은 책 한 권을 들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게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무엇을 할지 정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남은 시간 셈이 도구를 넘어 주인이 되면 다른 문제가 옵니다.
늦었다는 이유로 시작을 안 하게 되죠. 이 나이에 뭘 배우겠나,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하는 문장이 그겁니다. 그런데 그 문장은 계산이 아니라 핑계의 얼굴을 한 계산입니다. 진짜 계산이라면 남은 시간에 무엇을 넣을지까지 나와야 하는데, 저 문장은 거기서 멈추거든요.
셈을 하셨으면 끝까지 하시죠. 남은 것이 얼마인지 재셨으면, 그 안에 무엇을 넣을지도 정하셔야 합니다.
저는 나이 드는 것을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일로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엇을 안 할지가 분명해지는 일로 보려고 하죠.
젊을 때는 다 해보라는 말을 듣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 말이 안 통합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정해야 하는 거죠. 그건 빼앗기는 게 아니라 넘겨받는 것에 가깝습니다.
오늘 두꺼운 책 앞에서 못 읽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그건 끝이 아니라 고를 차례가 왔다는 신호일 겁니다. 무엇을 안 읽을지 정하는 사람만이 무엇을 읽을지도 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 목록은 남이 대신 못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