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고민하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은 선배가 계셨습니다. "충분히 이해해"라고 말하며 장단점을 정리해 주셨다고요.
그런데 후배가 "그냥 같이 속상해해 주면 좋겠어요"라고 해서 말문이 막혔답니다. 선배가 건넨 것은 이해였고, 후배가 바란 것은 공감이었습니다.
공감과 이해는 둘 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처지에 다가가는 일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 사람 편에서 생각해 봅니다. 다가간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나도 함께 느끼는 것이고, 이해는 상대가 왜 그런 마음인지 그 사정을 머리로 알아듣는 것입니다.
공감에는 감정이 오갑니다.
후배가 속상하면 나도 속이 상합니다. 해결책이 없어도 됩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온도를 느끼는 거죠. 그래서 공감은 말이 적어도 전해집니다. "속상했겠다" 한마디로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공감과 동감, 편들기와 공감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해와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이해에는 설명이 오갑니다.
후배가 왜 고민하는지, 어떤 조건이 걸려 있는지를 알아듣습니다. 그 감정을 꼭 함께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이해는 정리와 조언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선배가 장단점을 정리한 것도 이해가 만든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둘 다 귀한 것입니다. 다만 상대가 원하는 쪽이 다를 때 엇갈리겠지요. 그날 선배와 후배가 그랬습니다.
공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정리보다 감정을 먼저 건네시면 됩니다.
이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사정을 정리해 주시면 됩니다. 헷갈리시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들어줄까, 같이 정리해 줄까?" 한 문장이 엇갈림을 막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은 같습니다. 내 마음도 같이 움직였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