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말에 그 상황이면 나도 그랬을 거라고 답하셨답니다. 그런데 대화가 거기서 끊겼다고 하시더군요.
나쁜 답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건 동감이었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은 공감이었습니다.
공감과 동감은 겉으로 보면 같은 편에 서는 말입니다.
둘 다 상대를 반박하지 않고, 둘 다 상대 쪽에 섭니다. 그래서 말한 사람은 자기가 잘 받아줬다고 여기죠. 그런데 받은 사람은 다르게 느낍니다.
갈리는 것은 무엇을 받았느냐입니다. 감정이냐 판단이냐입니다.
공감은 상대가 지금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 오는 일입니다.
그 상황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안 봅니다. 힘들다고 하면 힘든 것이 도착합니다. 판단이 없으니 상대는 방어할 것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공감을 받으면 말이 더 나옵니다. 아직 안 한 얘기가 이어지죠.
동감은 상대의 생각이 맞다고 하는 일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판단이 들어 있습니다. 옳다고 해준 것이니까요.
동감이 나쁜 게 아닙니다. 다만 판단이 오는 순간 그 대화는 결론 쪽으로 넘어갑니다. 결론이 났으니 더 할 말이 없어지고, 그래서 대화가 끊깁니다.
말한 뒤에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보시면 됩니다.
두 번째가 필요한 자리도 있습니다. 결정을 앞두고 확인받고 싶을 때는 동감이 정확한 답이죠. 문제는 아직 감정을 다 못 꺼낸 사람에게 동감을 주는 경우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사실을 계속 덧붙이면 아직 감정 단계입니다. 그때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어떻게 할지를 물으면 판단 단계로 넘어온 겁니다. 그때 감정만 받아주면 답답해하겠지요. 순서가 있는 것이지 한쪽이 늘 옳은 게 아닙니다.
공감을 주실 때는 판단을 빼시면 됩니다. 옳다 그르다를 말하지 않고 지금 느끼는 것을 그대로 옮겨 말하는 것입니다. 많이 힘드셨겠다, 이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동감을 주실 때는 반대입니다. 감정에 머무르지 말고 판단을 분명히 밝히시면 됩니다.
두 이름을 갈라두면 상대가 서운해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안 받아줘서가 아니라 다른 걸 받아서 생긴 서운함이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편에 서는 것은 같습니다. 감정을 받았는지 판단을 줬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