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문법책을 석 달째 빌려 가시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반납할 때마다 한숨을 쉬셨죠. 매일 하는데 그대로예요.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처음엔 빨리 늘었습니다. 시작할 땐 하루하루가 달랐죠. 그 속도에 익숙해지면 느려진 게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늘어나는 게 눈에 안 보입니다. 기초가 다져지는 시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군요. 기준이 높아졌습니다. 실력이 늘면 보이는 것도 많아져서, 부족한 점이 더 크게 보입니다. 비교하게 됩니다. 앞서 남보다 느린 것 같은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정체기엔 그 비교가 더 아프죠.
배우는 일은 계단처럼 오를 때가 많습니다. 한동안 평평하다가 어느 순간 한 칸 올라서죠. 평평한 구간은 멈춘 게 아니라, 다음 칸을 오를 힘이 모이는 시간인 겁니다.
앞서 산허리의 나무를 적었습니다. 높이 자라려는 나무일수록 뿌리를 어둠 속으로 깊이 뻗는다고 했죠. 땅 위에선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는 시간에도, 아래에선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겁니다.
또 앞서 니체 가장 높은 산 뜻을 적으며,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곳을 지나야 제 높이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정체기는 그 깊은 곳을 지나는 시간일지도 모르죠.
위로 자라지 않는 날에도 뿌리는 아래로 자란다. 그 보이지 않는 날들이 다음 봄의 키를 정한다.
석 달 전의 저와 비교하십시오. 어제가 아니라요. 그 사이 쌓인 게 보일 겁니다. 방법을 조금 바꿔 보십시오. 같은 방식만 반복하면 정말 멈출 수도 있습니다. 책을 바꾸거나, 순서를 바꾸는 거죠. 쉬어 가도 괜찮습니다. 앞서 멈췄다 다시 시작 못 하는 마음을 적었는데, 잠깐 쉬는 것과 그만두는 것은 다르더군요. 작은 기록을 남기십시오. 오늘 한 것을 한 줄씩요. 쌓인 줄이 증거가 됩니다.
넉 달째 되던 날, 그 손님은 문법책을 반납하고 한 단계 높은 책을 고르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읽히는 문장이 늘었다고요. 석 달 동안 아무것도 안 는 줄 알았는데, 다 쌓이고 있었다며 웃으시더군요.
제자리 같은 시간은 앞으로도 찾아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평평한 날들을 뿌리가 자라는 시간으로 믿고, 다음 칸을 오를 힘을 묵묵히 모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