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책만 오래 읽어 왔다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을 스승처럼 여겼다고요.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 책을 읽으려니 배신하는 것 같다며 머뭇거리시더군요. 저는 『차라투스트라』 제1부의 마지막 장을 펼쳐 드렸습니다.
「베푸는 덕에 대하여」는 제자들이 떠나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손잡이가 황금으로 된 지팡이였죠.
차라투스트라는 그 금을 보며 묻습니다. 금은 왜 가장 귀한 것이 되었을까. 그리고 답합니다. 흔하지 않고, 쓸모를 따지지 않으며, 빛나고, 그 빛이 온화하며, 늘 자기를 내어 주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니 가장 높은 덕도 이와 같다고 말하죠. 베푸는 덕이 가장 높은 덕이다.
여기서 베푼다는 건 물건을 나눠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앞서 낯선 사람의 친절을 적으며 넘치는 잔 이야기를 했는데, 차라투스트라의 베풂은 넘쳐서 흘러나오는 것이죠.
억지로 짜내는 친절도, 대가를 바라는 선물도 아닙니다. 제 안이 가득 차서 저절로 흘러넘치는 것, 그게 베푸는 덕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이 덕을 가진 사람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도 부르죠. 제 잔을 먼저 채워야 넘칠 수 있으니까요.
이 장의 끝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놀라운 말을 남깁니다. 제자들에게요.
언제까지나 제자로만 머무는 것은 스승에게 잘 보답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하죠. 이제 나를 잃고 너희 자신을 찾으라. 너희가 모두 나를 부인할 때 비로소 나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가장 많이 베푼 스승이 마지막에 베푸는 것은 자신을 떠날 자유였습니다. 앞서 니체 바그너 결별을 적었는데, 니체 자신도 스승을 넘어서며 제 길을 낸 사람이었죠.
받은 것을 그대로 품고만 있는 자는 그릇일 뿐이다. 받은 것을 소화해 제 것으로 다시 내어 주는 자가 비로소 샘이 된다.
배운 것을 제 말로 바꿔 보십시오. 스승의 문장을 그대로 외우는 대신 제 경험으로 다시 말하는 겁니다. 다른 목소리도 들으십시오. 그것이 스승을 버리는 일은 아닙니다. 스승에게서 받은 눈으로 더 넓게 보는 일이죠. 넘칠 때 나누십시오. 무리해서 베풀면 금방 마릅니다. 먼저 채우고, 넘친 것을 나누는 겁니다.
그 손님은 그 장을 읽고 한참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그 작가가 추천했던 다른 작가의 책을 빌려 가셨죠. 이건 배신이 아니라 숙제 같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많은 책과 사람에게서 받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그대로 품기만 하지 않고, 제 것으로 소화해 넘치는 만큼 다시 나누며 제 샘을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