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객잔에 오는 손님들 얘기에 단풍이 자주 나와. 주말에 산에 다녀왔다고. 뉴스에서도 단풍이 내려오기 시작했다고 했다더라.
한 단골은 새벽부터 올라갔대. 꼭대기는 벌써 물들었고 아래는 아직 초록이었다고. 산이 위에서부터 물든다는 걸 그 손님 덕에 알았어.
재밌는 게 있었어. 손님들이 사진은 잠깐 보여주고, 정작 오래 하는 얘기는 내려오는 길이야.
무릎이 아팠다, 길을 잘못 들었다, 내려오다 만난 노점 국수가 제일 맛있었다. 꼭대기 얘기는 한 줄인데 내려온 얘기는 끝이 없어.
나는 그게 좀 웃기면서도 이해가 됐어. 올라갈 땐 목표만 보이는데 내려올 땐 주변이 보이거든.
이 얘기 들으면서 무협이 떠올랐어. 무협 주인공은 왜 다 산에서 내려오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잖아. 하산은 출발이 아니라 시험이라고.
무협에서 산은 올라가는 데가 아니라 머무는 데야. 문파가 거기 있고, 은거고수가 거기 살고, 주인공은 거기서 자라. 그리고 이야기는 산을 내려오는 순간 시작해.
단풍 얘기하는 손님들이랑 방향이 같아. 진짜 얘기는 내려와서부터야.
그러고 보니 무협엔 단풍 장면이 거의 없어. 무협엔 왜 계절이 없냐는 얘기도 전에 했었지. 강호는 날씨가 잘 안 바뀌는 세계라고.
나는 그게 좀 아까워. 단풍 든 산에서 하산하는 장면이면 그림이 꽤 좋을 텐데. 붉은 길을 내려오는 젊은 놈 하나. 그 장면 하나로 첫 화를 열어도 될 것 같아.
생각해보니 객잔이 원래 그런 자리야.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처음 앉는 데.
무협에서도 하산한 주인공은 객잔부터 들르잖아. 단풍 보고 온 손님들도 산 아래서 뭘 먹고 왔다고 하고. 내려온 사람은 일단 앉아서 뭔가 먹어야 해.
단풍 보러 다녀오면 객잔에 들러서 내려온 길 얘기해줘. 그게 제일 듣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