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 적들이 세가 주인을 노리고 쳐들어와. 주인이 앞에 나서서 싸우다가 쓰러져. 다들 끝났다고 생각해.
근데 쓰러진 사람은 진짜가 아니었어. 똑같이 꾸민 대역이었지. 진짜 주인은 이미 다른 데로 몸을 피했고.
대역은 진짜를 지키려고 세우는 사람이야.
우두머리가 쓰러지면 조직이 무너져. 그래서 위험한 자리엔 대역을 먼저 내보내. 무협 쌍둥이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같은 얼굴이 정체를 흔든다고. 대역은 쌍둥이가 아니라 꾸며서 같은 얼굴을 만든 거야. 인피면구 얘기도 했었지. 얼굴을 바꾸는 물건. 대역한테 그게 쓰이기도 해.
대역의 슬픔은 이름이 없다는 거야.
남의 이름으로 서고, 남의 이름으로 다치고, 가끔은 남의 이름으로 쓰러져. 살수는 왜 이름이 없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대역도 비슷해. 다른 점은 살수는 이름을 지우고, 대역은 이름을 빌려 산다는 거지.
그래서 무협에서 대역이 쓰러지는 장면은 무거워. 진짜는 살았는데, 쓰러진 사람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몰라.
잘 쓴 무협은 대역 이야기를 비틀어. 대역을 오래 하다 보니 대역이 진짜보다 더 진짜가 되는 거야.
진짜 주인은 숨어 있는 동안 사람들 마음을 잃고, 대역은 앞에 서는 동안 사람들 마음을 얻어. 그러면 질문이 생겨. 누가 진짜 주인이냐. 그 질문이 이야기를 깊게 만들어.
어느 날 점소이가 추워서 내 겉옷을 빌려 입고 계산대에 서 있었어. 나는 부엌에 있었고.
단골 몇이 들어오면서 뒷모습만 보고 나한테 하듯 말을 걸었대. 오늘 국 뭐냐고, 외상 좀 달아달라고. 점소이가 돌아서니까 다들 깜짝 놀랐지. 그날 점소이는 반나절 동안 객잔 주인 대역이었어.
진짜 대신 앞에 선 인물 중에 기억나는 사람 있으면 들려줘. 그 사람 이름이 끝까지 남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