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읽을지 모르겠다는 손님과 대출대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질문만 몇 개 건넸죠. 요즘 무엇이 궁금하신지, 지난번 책은 어땠는지.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손님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나가시며 말씀하셨죠. 말하다 보니 알겠네요.
그날 니체의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의 짧은 잠언에서 이렇게 씁니다.
한 사람은 자기 생각의 산파를 찾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렇게 좋은 대화가 생겨난다.
산파는 아이를 낳는 사람이 아니라, 낳는 걸 돕는 사람이죠. 대화에서도 그렇다는 겁니다. 생각을 품은 사람이 있고, 그 생각이 세상에 나오도록 돕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좋은 대화에서 듣는 사람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태어나게 돕는 사람입니다. 앞서 해결해 주려는 버릇을 적으며, 답을 쥐여 주기보다 곁에 머무는 게 낫다고 했는데, 니체의 산파 비유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좋은 대화는 두 사람의 바람이 맞물릴 때 생깁니다. 한 사람은 말하고 싶고, 한 사람은 듣고 돕고 싶을 때요.
반대로 둘 다 말만 하고 싶으면 대화가 엇갈리죠. 앞서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숨기는 법 니체 뜻을 적었는데, 말이 넘치는 자리에선 정작 생각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둘 다 돕고만 싶어도 어색해지고요.
답을 쥐여 주는 자는 남의 생각을 대신 낳는다. 물음을 건네는 자는 그 생각이 제 힘으로 태어나게 돕는다.
오늘 나는 어느 쪽인지 알아차리십시오. 생각을 꺼내고 싶은 날인지, 남의 생각을 도와주고 싶은 날인지요. 도울 때는 질문하십시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같은 물음이 산파의 손입니다. 말하고 싶을 때는 들어 줄 사람을 고르십시오. 앞서 니체 우정론을 적었는데, 생각을 도와줄 벗이 곁에 있으면 든든하죠. 서로 바꿔 가며 하십시오. 오늘은 제가 돕고, 다음엔 도움을 받는 겁니다.
그 손님은 그 뒤로도 가끔 대출대에서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이번엔 손님이 제게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서님은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요. 그날은 제가 말하고, 손님이 들어 주셨습니다.
좋은 대화는 늘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답을 건네기보다 물음을 건네며, 서로의 생각이 태어나도록 돕는 자리를 이 서가에서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