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공룡 책을 두 손으로 붙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다른 책들의 권장 학년 표시를 세 권째 확인하고 계셨죠.
결국 학년이 맞는 책을 빌려 가셨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다음 주에 그 책이 어떤 상태로 돌아올지 대충 알겠더군요.
책에 붙은 대상 연령이나 권장 학년은 출판사가 정한 것입니다. 통일된 규칙이 있는 게 아니죠.
같은 책이 어느 출판사에서는 초등 저학년, 다른 데서는 중학년으로 나옵니다. 글자 크기와 쪽수로 대충 매기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니 그 숫자를 맞춘다고 아이에게 맞는 책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이 책을 물어보시면 이 셋을 봅니다.
첫째, 아이가 이미 좋아하는 것. 공룡이든 자동차든 요리든, 이미 붙들고 있는 주제가 있으면 거기서 시작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아는 것이 있으면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넘어가거든요.
둘째, 한 쪽에 모르는 낱말이 몇 개인가. 아무 쪽이나 펴서 아이에게 소리 내어 읽혀 보십시오. 한 쪽에 서너 개까지는 괜찮고, 그보다 많으면 재미를 못 느낍니다.
셋째, 아이가 스스로 골랐는가. 이게 사실 제일 큽니다.
여기서 어른들이 자주 뒤집어 생각하시더군요. 수준에 맞아야 재미있게 읽는다고요.
제가 본 건 반대입니다. 재미있으면 수준을 넘어서 읽습니다. 좋아하는 주제 앞에서 아이는 자기 실력보다 어려운 책도 붙들고 있죠. 반대로 수준이 딱 맞아도 관심 없는 주제면 세 쪽에서 덮습니다.
배움은 아래에서 위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끌리는 것을 향해 기울어지며 나아간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이가 예전에 읽던 쉬운 책을 다시 잡을 때 걱정하시는 분이 많죠.
그건 후퇴가 아닙니다. 어른도 지치면 가벼운 걸 읽습니다. 아이에게도 부담 없이 성공하는 경험이 필요하고, 그게 다음 어려운 책을 잡을 힘이 됩니다.
그림책을 유아용으로만 보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고학년 아이가 그림책을 붙들고 있어도 그냥 두시면 됩니다. 좋은 그림책은 어른이 읽어도 남는 게 있죠. 오히려 글이 적어서 아이가 자기 속도로 생각할 여지가 큽니다.
그날 그 어머니께 제가 못 드린 말이 있습니다.
아이 책을 고르는 일에서 어른이 할 수 있는 건 좋은 것들 앞에 데려다 놓는 것까지입니다. 그다음에 무엇을 집는지는 아이가 정하죠. 어른이 골라준 책은 읽어야 할 것이 되고, 아이가 고른 책은 읽고 싶은 것이 됩니다. 그 둘의 차이가 나중에 아주 커지더군요.
다음에 오시면 아이가 붙들고 있던 책부터 빌려보시죠. 그 책이 학년에 안 맞아도 괜찮습니다. 읽는 사람이 정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