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반도체 장비 회사가 뭘 만드는지, 빛으로 그린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봤잖아요. 저는 그게 다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웃 언니가 그러는데, 그 기계에 넣는 것들을 만드는 데가 또 따로 있대요.
박예슬 기계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뭘 또 넣는다는 건데요?
신미혜 밥솥은 한 번 사면 그만인데 쌀은 매번 사야 하는 거예요.
들은 대로 옮기면 이래요. 우선 그림을 그릴 동그란 판이 있어야 한대요. 그 판을 만드는 데가 따로 있고요.
그 위에 빛에 반응하는 액체를 얇게 발라야 한다던데요. 그래야 빛을 쬐었을 때 지나간 자리와 막힌 자리가 갈린다고요. 앞에서 본을 떠서 찍어 낸다는 걸 알아봤잖아요. 그 찍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이 액체래요.
그다음엔 필요 없는 데를 깎아 내는 가스와 약품이 들어가고, 다 하고 나면 닦아 내는 액체가 또 들어간대요. 하나 만드는 데 이런 게 수없이 오간다고 하더라고요.
박예슬 그럼 이건 한 번 사고 끝이 아니라 계속 사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집들의 살림 결이 장비 쪽이랑 다르대요.
기계는 크게 한 번 팔고 나면 다음 주문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넣는 것들은 공장이 도는 동안 계속 나간다던데요. 값은 기계보다 훨씬 작은데 꾸준하다는 거예요.
신미혜 밥솥 파는 집이랑 쌀 파는 집이 다른 셈이죠. 쌀집은 밥을 짓는 동안 계속 가는 거예요.
이 대목이 저는 제일 뜻밖이었어요. 그럼 더 싼 데로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거든요.
그게 잘 안 된대요. 이 액체 하나만 바꿔도 결과가 달라져서, 정말 괜찮은지 오래 시험해 봐야 한다던데요. 그 시험이 몇 달씩 걸린대요.
그래서 새로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고, 대신 한 번 들어가면 오래 간다고 했어요. 앞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가 어느 차에 들어갈지 미리 정해진다는 걸 알아봤잖아요. 그거보다 더 단단히 묶이는 자리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뉴스에서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기계를 못 팔게 하는 얘기 말고, 넣는 것들을 안 준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대요.
기계는 이미 갖고 있어도 넣을 게 없으면 못 돌리잖아요. 그래서 이 칸이 조용한데도 힘이 있는 자리라고 했어요. 몇 해 전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저마다 자기 쪽에서 만들려고 애쓴다더라고요.
동진쎄미켐이나 솔브레인 같은 이름을 들었어요. 다만 어느 집이 어디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는 저희가 밖에서 알기 어렵대요.
기계 말고 넣는 것들을 만드는 데가 따로 있다는 것, 판과 액체와 가스가 다 다른 집에서 온다는 것, 기계는 한 번이고 넣는 건 매번이라는 것, 그리고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어렵다는 것.
어느 집이 나은지는 저도 몰라요. 다만 반도체 얘기가 나오면 이제 하나는 더 물어봐요. 기계 쪽 얘기예요, 넣는 것 쪽 얘기예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라던데요. 저는 그 말을 붙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