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언니가 뉴스를 보다가 물었대요. 반도체 안에 길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걸 누가 다 그리느냐고요.
저도 그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보던 영상에서 그러는데, 그건 그리는 게 아니라 찍어 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박예슬 찍어 낸다는 게 도장처럼 눌러 찍는다는 건가요?
신미혜 그보다 사진 인화하던 것에 가까운 거예요.
들은 대로 옮기면 이래요. 그리려는 모양을 큰 본에 미리 새겨 두고, 그 본에 빛을 쬐어서 판 위에 옮긴대요. 빛이 지나간 자리와 막힌 자리가 갈라지면서 모양이 남는다던데요.
남편이 옛날에 사진 인화하던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필름에 빛을 쬐어 종이에 옮기던 거요. 그거랑 같은 이치라고 했어요. 한 장씩 손으로 그렸으면 지금 같은 건 애초에 못 만들었을 거래요.
신미혜 붓으로 한 획씩 긋는 게 아니라 판박이를 붙이는 셈이죠.
여기가 저는 제일 신기했어요.
길을 더 촘촘하게 넣으려면 빛이 더 가늘어야 한대요. 굵은 붓으로는 가는 선을 못 긋는 것과 같다고요. 그래서 더 짧은 빛을 만들어 쓰는 쪽으로 가는데, 그 짧은 빛을 만드는 게 아주 어렵다더라고요.
빛을 만들고, 흩어지지 않게 모으고, 정확한 자리에 떨어뜨리는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한대요. 그걸 다 해내는 기계가 세상에 사실상 한 집에서만 나온다던데요. ASML이라는 이름이 그래서 자꾸 나오는 거였어요.
그 집이 통째로 만드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안에 들어가는 부품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고, 그걸 여러 나라 회사가 나눠 만들어서 보낸대요. 빛을 모으는 거울 쪽은 또 다른 나라의 오래된 집이 맡는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한 대가 나오려면 여러 집이 다 맞아떨어져야 하는 거라던데요.
박예슬 그럼 주문이 몰려도 얼른 더 못 만드는 거잖아요.
못 만든대요. 한 대 만드는 데도 오래 걸리고, 사 간 다음에 자리를 잡고 돌리기까지도 한참이라고 했어요. 앞에서 반도체 장비 회사를 알아봤을 때 순서를 기다린다는 말이 나왔잖아요. 그 줄이 바로 이 얘기였더라고요.
이건 저도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이 기계는 아무 데나 팔 수 있는 게 아니라던데요. 나라 사이 약속에 따라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진다고요.
파운드리가 뭔지 앞에서 알아봤잖아요. 남의 주문을 받아 찍어 주는 그 집들이 이 기계를 놓고 줄을 선다는 건데, 그래서 기계 이야기가 나오면 늘 나라 이름이 같이 붙는 거래요.
다만 그 약속이 어떻게 될지는 저희가 알기 어렵대요. 영상에서도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고요.
그리는 게 아니라 본을 떠서 찍는다는 것, 가늘게 찍으려면 빛이 가늘어야 한다는 것, 그 빛을 다루는 기계가 몇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기계가 여러 집의 부품으로 겨우 한 대씩 나온다는 것.
그래서 뉴스에 이 이름이 자주 나오는 거였어요. 저는 이제 반도체 얘기가 나오면 그 기계 줄이 지금 어디쯤인지를 한 번 물어보게 됐어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라던데요. 저는 그 말을 붙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