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계산할 때 주머니를 한참 뒤졌어. 모자란 걸 아는 눈치였는데도 계속 뒤지더라고.
내가 먼저 다음에 받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얼굴이 빨개져서 나갔지. 돈보다 그게 더 힘들었던 거야.
나는 객잔에서 강호 얘기를 꺼낼 때 대개 옛날에 있던 걸 말해. 제도가 있어서 편했다는 식으로.
이 대목은 그렇게 못 쓰겠어. 체면은 강호에서도 똑같이 무거웠거든. 아니, 더 무거웠지.
무협 읽어보면 체면 때문에 일이 커지는 장면이 널렸어.
세 번째가 제일 흔하고 제일 아깝지. 청탁 얘기를 전에 했잖아. 강호엔 부탁하는 법이 있었다고. 그런데 법이 있어도 안 쓰는 놈이 많았어. 체면이 걸려서.
자기를 낮춰 말하는 게 강호에선 무기였다고 내가 전에 썼어. 계산이라고.
그때 나는 그걸 좀 깔끔하게 적었는데, 뒤집어 보면 그것도 체면 관리야. 낮춰놓으면 져도 안 깎이니까 미리 낮추는 거잖아. 지는 걸 대비하는 동작이지 겸손이 아니고.
그러니까 강호 사람들도 체면에서 자유로웠던 게 아니야. 다루는 방법이 있었을 뿐이고, 그 방법도 결국 체면 때문에 생긴 거지.
이 얘기를 하면 그럼 선불로 받으면 되지 않냐는 말이 나와.
외상 장부 얘기를 쓸 때 나는 외상이 관계를 남겨두는 장치라고 적었어. 그건 맞아. 그런데 외상이 있으면 모자란 게 드러난다는 것도 맞아. 선불이면 모자라면 애초에 안 들어오면 되니까 아무도 안 보잖아.
그래서 요새 다들 선불이 편하다고 하는 게 인색해진 게 아닐 수도 있어. 체면을 안 걸고 넘어갈 수 있는 방식인 거지. 나는 그걸 좀 늦게 알았어.
그 손님한테 내가 한 건 하나야. 먼저 말했어. 다음에 받겠다고.
그것도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어. 내가 먼저 말하면 모자란 걸 내가 알았다는 뜻이니까 그게 더 민망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더 뒤지게 놔두는 건 아닌 것 같았어.
구경꾼 얘기를 쓸 때도 답을 못 냈다고 적었는데, 이것도 그래. 강호도 못 푼 걸 내가 풀 수는 없지.
모자라면 그냥 말해. 그게 제일 빠르거든. 나도 그게 안 되는 놈이라 이런 글을 쓰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