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려던 책을 놓고 옆 칸의 두꺼운 책을 대신 집으시더군요. 그러고는 원래 책을 그 밑에 깔아서 가져오셨습니다.
위에 얹힌 책은 대출대에서 잘 보이고, 밑에 깔린 책은 잘 안 보입니다. 저는 그 순서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남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말을 우리는 큰 자리에서만 씁니다. 발표를 하거나 사람 앞에 설 때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훨씬 작은 자리에서 계속 일어납니다. 무슨 책을 빌릴지, 어떤 음악을 틀지, 어디에 앉을지 같은 것들이요. 아무도 안 보는데도 봤을 때를 가정하고 고르는 겁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대개 특정한 사람이 안 나옵니다.
누가 볼지 모르는 막연한 누군가죠. 실재하지 않는 관객을 위해 진짜 내 선택을 바꾸고 있는 겁니다. 이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좀 빠지더군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볼 때와 남이 나를 볼 때의 비중을 다르게 잡습니다.
내가 남의 선택을 볼 때는 스치듯 지나갑니다. 옆 사람이 무슨 책을 빌리는지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 선택이 보일 때는 그게 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한 장면이 나를 요약한다고 믿는 겁니다.
실제로는 한 장면은 한 장면일 뿐입니다.
저는 이걸 취향의 문제로 안 봅니다. 실제로 손해가 나거든요.
읽고 싶은 책 대신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을 빌리면 대개 안 읽고 반납합니다. 그러면 그 이 주가 통째로 없어지죠. 남의 눈을 챙기느라 내 시간을 쓰는 겁니다.
그런 반납이 몇 번 쌓이면 다음에는 읽기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재미없는 책만 빌린 사람이 되니까요.
남의 눈에 맞춰 고른 것은 남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을 파는 일이다.
크게 바꾸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 정도를 권합니다.
한 번에 하나만. 오늘 세 권을 빌리신다면 그중 한 권은 남 눈 신경 안 쓰고 고르시는 겁니다. 나머지 둘은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작은 자리에서 되찾은 결정이 쌓이면 큰 자리에서도 손이 나갑니다. 반대로 작은 자리부터 남에게 맡기면 큰 자리에서는 이미 늦더군요.
밑에 깔아서 가져오셨던 그분께 제가 못 드린 말이 있습니다.
저희 눈에는 제목이 안 들어옵니다. 바코드와 청구기호로 지나가죠. 하루에 수백 권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무엇을 빌리셨는지는 남지 않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고르시든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러니 위에 얹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