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소설책을 펴 놓은 손님이 혼잣말을 하고 계셨습니다. 내일 회의, 그 자료, 그 메일. 책은 같은 쪽에 머물러 있었죠. 그러다 수첩을 꺼내 할 일을 몇 줄 적으시더니, 그제야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셨습니다.
끝나지 않은 일이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 못 한 일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죠. 책임감이 큽니다. 내가 놓치면 일이 틀어질 것 같아서, 쉬면서도 붙들게 됩니다. 쉬는 법을 잊었습니다. 앞서 쉬는 걸 미안해하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일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한 분들도 많더군요. 일과 쉼의 경계가 흐려졌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언제든 일 메시지가 오니까요. 앞서 바로 답해야 마음이 놓이는 버릇을 적었는데, 그 버릇이 쉬는 날에도 이어집니다.
쉬어도 피곤합니다. 몸은 누워 있어도 머리가 일하고 있으니까요. 좋은 시간을 놓칩니다. 가족과 있어도, 책을 펴도 마음이 딴 데 가 있죠. 일도 더 무거워집니다. 쉬지 못한 채 다시 출근하면, 일이 더 크게 느껴지더군요.
앞서 숭고한 자 뜻을 적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늘 진지하고 무거운 영웅에게 팔을 머리 위에 얹고 쉬는 법을 배우라고 했죠. 영웅은 쉬는 것까지 넘어서야 한다고요.
또 앞서 니체 정오 뜻을 적으며, 한낮 나무 아래 잠든 차라투스트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길 끝에서 그가 만난 완전한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 짧은 쉼이었죠.
일을 등에 지고 쉬는 자는 쉬는 것이 아니다. 문 앞에 일을 내려놓고 들어와야 비로소 집이다.
퇴근 전에 내일 할 일을 적으십시오. 그 손님처럼요. 머릿속에서 종이로 옮기면 덜 맴돕니다. 끝내는 의식을 만드십시오. 노트북을 닫는 소리, 옷을 갈아입는 일 같은 작은 신호로 하루를 닫는 거죠. 쉬는 시간엔 일 알림을 끄십시오. 정말 급한 일은 전화로 오게 약속해 두면 됩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십시오. 걷기, 요리, 정리. 몸이 바쁘면 머리가 일에서 조금 떨어집니다. 앞서 신체는 큰 이성 뜻을 적었는데, 몸이 먼저 쉬는 법을 알려 주기도 하죠.
그 손님은 요즘 금요일 퇴근 전에 다음 주 할 일을 다 적어 두고 나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말엔 그 수첩만 믿고 잊는다고요. 지난 주말엔 소설 한 권을 다 읽었다며 웃으셨습니다.
일은 늘 따라오려 할 겁니다. 그래도 저는 일과 제 시간 사이에 문 하나를 달고, 그 문 앞에 일을 내려놓은 채 제 하루로 들어가는 연습을 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