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기록을 정리하다가 오래 안 뵌 분의 이름을 봤습니다. 연락처를 한참 들여다봤죠.
결국 아무것도 안 보냈습니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못 정했거든요.
먼저 연락을 못 하는 걸 두고 정이 없다고들 하죠. 저는 그 설명이 잘 안 맞는다고 봅니다.
정이 없으면 화면을 켜지도 않습니다. 켰다가 끄는 사람은 이미 여러 번 생각한 사람이죠.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첫 문장입니다.
오래 연락을 안 했을수록 첫 문장이 커집니다.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지죠.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했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고, 갑자기 연락하는 게 뭘 부탁하려는 걸로 보일까 걱정되고, 상대가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습니다. 한 줄 보내는 일에 이 셋을 다 정리하려니 안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첫 문장은 더 무거워집니다. 이 고리가 몇 해를 갑니다.
여기가 실제로 뒤집히는 대목입니다.
저는 오래 연락 없던 사람에게 안부를 받아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때마다 왜 이제 연락했느냐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반가웠고, 그게 다였습니다.
보내는 쪽은 그동안의 시간을 다 세는데, 받는 쪽은 그 한 줄만 봅니다. 무게가 다른 겁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설명을 빼십시오.
문득 생각나서 연락드렸다는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그동안 어땠는지, 왜 연락을 못 했는지는 안 쓰셔도 됩니다. 그걸 쓰기 시작하면 문장이 길어지고, 길어지면 못 보냅니다.
그래도 어려우시면 걸어둘 자리를 하나 만드시면 됩니다.
무언가를 보다가 그 사람이 떠올랐다고 하시면 되죠. 책 한 권, 지나가다 본 가게, 예전에 같이 갔던 곳. 저는 이걸 자주 씁니다. 연락의 목적이 안부가 아니라 그 물건이 되면 훨씬 가볍게 나가더군요.
다리는 건너기 위해 놓는 것이지, 건널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놓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는 미리 정해두시는 게 좋습니다. 답이 늦거나 안 올 수도 있습니다.
그건 대개 나를 거절한 게 아니라 그쪽도 첫 문장을 못 정하고 있는 겁니다. 같은 자리에 있는 거죠. 그러니 보내고 나서 답을 세지 마십시오. 보낸 것까지가 내 몫입니다.
그날 저는 결국 다음 날 아침에 한 줄을 보냈습니다. 오래 안 뵈어서 생각났다고요. 답은 저녁에 왔고, 별 얘기 아니었습니다.
그 한 줄에 이유를 붙이려다 하루를 썼던 게 좀 아까웠습니다. 하고 싶으신 연락이 있으시면 이유 없이 보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