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관 안내를 세 번 드렸는데도 짐을 반쯤 챙긴 채로 앉아 계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가기 싫으셨던 게 아니라 일어서는 동작이 안 나오셨던 것 같더군요. 저도 모임에서 그럽니다.
일어서지 못하는 자리를 보면 대개 시간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이미 늦은 걸 알고 있죠.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일어서려면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이 자리 전체를 향합니다. 지금까지 오간 얘기를 내가 끊는 셈이 되니까요. 그 몇 초가 부담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다음 사람이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누가 먼저 하면 따라 하기는 쉬우니까요.
여기가 실제로 붙들리는 지점입니다.
먼저 일어나는 게 이 자리가 별로였다는 표시로 읽힐까 봐 걱정되는 거죠. 특히 그 자리를 누가 마련했으면 더 그렇습니다. 초대한 사람에게 미안해집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것으로 그 마음을 증명하려 하면 값이 계속 나갑니다. 다음 날 피곤하고, 다음번에는 그 모임 나가기가 부담스러워지죠. 오래 앉아 있는 것과 그 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일인데 그게 붙어버린 겁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그 자리에 잘 못 있습니다.
시계를 보고, 언제 말을 꺼낼지 재고, 다음 일정을 계산하죠. 몸은 앉아 있는데 마음은 이미 나가 있습니다. 그 삼십 분은 그 자리에도 나에게도 값을 안 합니다.
가장 잘 듣는 방법은 이겁니다. 시작할 때 말해두는 것.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앉자마자 한마디 해두시면, 그 시각이 오면 아무 말 없이 일어나실 수 있습니다. 자리를 끊는 게 아니라 이미 알려둔 걸 지키는 게 되니까요.
이걸 하고 나서 저는 모임에서 훨씬 편해졌습니다. 나가는 걸 정해두니 있는 동안 시계를 안 봅니다.
언제 끝날지 아는 사람만이 있는 동안 온전히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다들 못 일어나는 자리에서는 누군가 먼저 해야 합니다.
먼저 일어나시면 그 뒤로 두세 명이 따라 일어납니다. 그분들도 다 기다리고 계셨던 거죠. 먼저 일어나는 건 자리를 깨는 게 아니라 여는 쪽에 가깝습니다.
짐을 반쯤 챙기고 앉아 계셨던 그분은 그날 제가 불을 반쯤 끄고 나서야 일어나셨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십 분 전에 정리를 시작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