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대에 책을 올려놓으시고는 표지를 손바닥으로 덮은 채 회원증을 내미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무슨 책인지는 안 봤습니다.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다만 그 손이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무엇을 읽는지가 알려지는 게 불편한 자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먼저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출 기록은 남죠. 안 남는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다만 성격이 다른 둘로 갈립니다.
뒤쪽은 대개 본인이 켜고 끌 수 있습니다. 마이페이지에 대출 이력 저장이라는 항목이 있고, 끄면 그때부터 안 쌓이고 이미 쌓인 것도 지울 수 있죠. 이걸 모르셔서 계속 신경 쓰시는 분이 많습니다.
이게 진짜 물음이시겠죠.
직원은 업무상 필요할 때만 봅니다. 반납 처리, 연체 안내, 예약 연결 같은 일이죠. 누가 무엇을 빌렸는지 들여다보는 화면을 하루 종일 켜놓고 있지 않습니다.
가족도 못 봅니다. 본인 회원증과 본인 인증으로만 조회되죠. 부모가 성인 자녀 것을 보려 해도 안 됩니다.
외부에 넘기지 않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절차를 거친 요구가 아니면 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요구 자체가 극히 드물죠.
이건 도서관마다 정한 방침이 아니라 이 직업의 오래된 약속이죠.
무엇을 읽는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읽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 둘이 사서 윤리의 앞자리에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읽는 것이 알려질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읽고 싶은 것을 안 빌립니다. 그러면 도서관이 하는 일의 절반이 사라지죠.
무엇을 읽었는지 감춰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은 읽고 싶은 것을 먼저 포기한다.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용 내역 저장을 꺼두십시오. 마이페이지에서 한 번이면 됩니다. 자동대출기를 쓰십시오.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처리됩니다. 요즘은 거의 모든 관에 있죠. 공용 컴퓨터를 쓰셨다면 로그아웃하십시오. 실제로 문제가 생기는 건 이쪽입니다. 시스템보다 자리를 뜨는 순간이 더 위험합니다.
표지를 덮고 계셨던 그분께 제가 못 드린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루에 지나가는 책이 수백 권입니다. 저희 눈에는 청구기호와 바코드로 지나가지 제목으로 지나가지 않습니다. 어떤 주제든 그 자리에 꽂혀 있다는 건 이미 누군가 그걸 필요로 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갖춰둔 겁니다.
읽고 싶은 것을 눈치 보며 고르기 시작하면, 정작 나에게 필요한 책은 끝까지 안 잡게 되더군요. 무엇을 읽을지는 남이 어떻게 볼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로 정하는 겁니다. 그 결정만은 아무한테도 넘기지 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