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작은 서점 앞에 북토크 안내문이 붙어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였지요.
퇴근하고 서둘러 갔어요. 서점 안에 접이식 의자 열다섯 개가 놓여 있었네요. 저는 창가 쪽 끝자리에 앉았어요.
작가가 책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글로만 읽던 문장들을 그 사람 목소리로 들으니 느낌이 달랐지요. 생각보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어요. 책을 읽을 때 제 머릿속에서 울리던 목소리와 비슷해서 신기했네요.
중간에 작가가 자기 책의 한 문장을 소리 내 읽었어요.
그런데 읽다가 목이 메어 잠깐 멈췄지요. 오래 연락 못 한 친구에 관한 문장이었어요. 서점 안이 조용해졌어요.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지요. 다들 그냥 기다려줬어요.
같은 문장 앞에서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순간, 낯선 사람들도 잠깐 한편이 된다.
그 침묵이 참 따뜻했어요.
서로 모르는 열다섯 명이 한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를 같이 기다려준 거니까요. 작가가 다시 읽기 시작하자 누군가 작게 박수를 쳤어요. 다들 따라 쳤고요. 작가가 쑥스럽게 웃었지요. 그 웃음에 다들 마음이 풀렸겠지요.
끝나고 책에 사인을 받았어요.
작가가 제 이름을 묻고 책 첫 장에 적어줬지요. 그 아래에 짧은 문장을 하나 덧붙였어요.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집에 와서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네요.
나오는 길에 서점 사장님이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씩 건네주셨어요.
이런 작은 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연다고 하셨지요. 손님이 많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다고요. 동네에 이런 자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웃으셨어요. 다음 달 안내문을 받아 들고 나왔지요. 그 종이가 조금 따뜻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쇼펜하우어는 책을 읽는 건 남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라고 했대요.
그날은 남의 목소리로 생각하는 저녁이었던 것 같아요. 책으로 읽을 때보다 그 마음이 훨씬 가깝게 들어오더라고요.
같은 문장 앞에서 함께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저녁은 따뜻하지요.
가끔은 작은 서점 의자 하나에 앉아 남의 목소리로 책을 들어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