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관 직전에 오셔서 밤에 읽을 거라며 두꺼운 책을 고르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걸 권해드렸죠. 밤에 읽는 책은 낮에 읽는 책과 조건이 다릅니다. 여기가 제 자리이기도 해서 정리해두겠습니다.
먼저 잠을 쫓는 쪽부터 말씀드리는 게 낫겠죠.
끝이 궁금해지는 책. 다음 장이 궁금하면 못 덮습니다. 재미있는 건 좋은데 자려던 계획은 무너지죠.
머리를 쓰게 하는 책. 논리를 따라가야 하는 글은 뇌를 깨웁니다. 낮에 안 읽히던 책이 밤에 읽히는 일은 거의 없고요.
화나게 하는 책. 세상 일을 다루는 글은 밤에 읽으면 오래 남습니다. 그러고 나면 잠이 안 오죠.
반대쪽은 이렇습니다.
한 꼭지가 짧게 끝나는 책. 수필이나 짧은 글 모음이요. 끊는 자리가 자주 나오면 덮기가 쉽습니다.
이미 아는 책. 앞서 다시 읽기 얘기를 적었는데, 재독이 밤과 잘 맞습니다. 뒤를 아니까 안 조급하죠.
속도가 느린 책. 문장을 천천히 읽게 되는 글이요. 시집이 밤에 잘 읽히는 이유가 그것 같습니다.
어려운데 안 급한 책. 이건 좀 뜻밖인데, 이해하려 애쓰지 않기로 하고 펴면 몇 쪽 만에 눈이 감깁니다.
여기가 갈리는 자리죠. 밤에 읽는 이유가 두 가지인데 섞여 있으면 매번 어긋납니다.
잠들려고 읽는 것이면 위의 조건대로 고르시면 됩니다. 진도는 포기하시고요. 하루에 읽을 시간이 그때뿐이라 읽는 것이면 다릅니다. 그때는 진짜 읽고 싶은 책을 펴시되 잠은 늦어질 각오를 하셔야죠.
둘 다 하려다 둘 다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밤에 화면으로 읽는 건 종이와 좀 다릅니다.
전자책이 편한 건 사실인데 불빛이 눈에 직접 들어옵니다. 밝기를 낮추고 화면을 따뜻한 색으로 바꾸시면 나아지죠. 앞서 큰글자 얘기에서 적은 설정을 여기서도 쓰시면 됩니다.
밤에 펴는 책은 무엇을 얻으려고 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여기서 끊으려고 펴는 것이다.
저는 짧은 글 모음을 하나 권했습니다. 두꺼운 책은 주말에 보시라고요.
다음에 오셔서 그러시더군요. 세 꼭지 읽고 잤다고요. 그러고는 그 두꺼운 책도 결국 빌려 가셨습니다. 낮에 읽으실 거라고요.
밤에는 밤에 맞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만 갈라두시면 두 권 다 읽으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