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대에서 한 손님이 한참 웃으셨습니다. 블라인드 북으로 빌린 책을 돌려주러 오셨다고요. 포장지에 "밤에 혼자 읽기 좋은 이야기"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열어 보니 평소라면 절대 안 골랐을 장르였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게 제일 재밌었다고요.
손님들 말과 뉴스를 보면, 책 표지를 종이로 싸서 가리고, 짧은 소개 문구 한 줄만 적어 빌려주거나 파는 행사가 도서관과 책방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블라인드 북, 책과의 블라인드 데이트 같은 이름으로 부르더군요.
제목도 작가도 모른 채 소개 한 줄만 보고 고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운영 방식은 곳마다 다르겠죠.
장르에 놀란 손님. 늘 같은 분야만 읽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쪽 책을 끝까지 읽었다고요. 앞서 늘 같은 분야 책만 고르게 되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그 벽이 한 번에 넘어갔다고 하시더군요. 아이와 함께 고른 이웃. 아이가 포장을 뜯는 순간을 선물 받는 것처럼 좋아했다고요. 이미 읽은 책이 걸린 손님. 포장을 뜯어 보니 예전에 읽은 책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또 좋았다고 하셨죠.
블라인드 북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표지와 제목, 별점으로 책을 고른다는 걸요. 앞서 제목만 보고 고를 때 함정과 후기부터 보는 버릇을 적었는데, 블라인드 북은 그 모든 걸 걷어 내고 소개 한 줄과 첫 쪽만 남기는 셈입니다.
그리고 소개 한 줄을 쓰는 일이 사서에게는 꽤 즐거운 고민이더군요. 그 책을 가장 잘 말해 주면서도, 너무 많이 말하지 않는 한 줄을 찾는 일이니까요. 앞서 도서관 추천 책 코너를 적으며 테이블에 놓인 책은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고 했는데, 블라인드 북은 더 조용하게 부르는 방식입니다.
얼굴을 가린 책은 목소리로만 말을 건다. 그 목소리에 끌려 펼친 책은 오래 남는다.
그 손님은 다음 블라인드 북도 빌려 가셨습니다. 이번엔 일부러 가장 끌리지 않는 소개 문구를 골랐다고요. 이번에도 뜻밖의 책이었으면 좋겠다며 웃으셨죠.
책은 표지로만 고를 수 없습니다. 저는 표지 너머의 한 줄로 누군가를 새 책에 닿게 하는 일을, 이 서가에서 조용히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