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뜬 목록을 보여주시며 이 중에 어느 게 있느냐고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다섯 권쯤 되는 목록이었고, 그중 세 권이 저희에게 있었죠. 요즘 이런 식으로 오시는 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물어보면 대답이 비슷하죠.
서가 앞에 서면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책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못 고르겠다고요. 그런데 화면은 다섯 권으로 줄여주니 그게 편하다는 겁니다.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낮아서 좋다고요. 그 말이 며칠 남았습니다.
기계가 골라주는 목록은 대체로 내가 이미 좋아한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니 실망할 확률이 낮죠.
그건 분명한 장점이죠.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헛읽기는 큰 손해니까요. 저도 그 편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대가가 있죠. 내가 좋아할 줄 몰랐던 것은 그 목록에 안 들어옵니다. 좋아한 적이 없으니 비슷한 게 없거든요.
여기가 두 방식이 갈리는 자리죠.
서가는 주제로 묶여 있지 내 취향으로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찾던 책 옆에 전혀 관심 없던 책이 서 있죠. 그게 눈에 들어오는 게 서가가 하는 일입니다.
앞쪽은 나를 알고, 뒤쪽은 나를 모릅니다. 나를 모르는 쪽에서만 나오는 게 있더군요.
대출 기록을 보면 몇 해에 걸친 변화가 보입니다. 개인을 들여다본다는 뜻이 아니라 전체 흐름 얘기죠.
한 사람이 빌리는 분야의 폭이 줄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같은 책으로 몰리는 정도가 세졌습니다. 화면이 골라주는 목록이 대체로 비슷하니 당연한 결과겠죠.
그러면 서가의 넓은 부분이 안 쓰이게 됩니다. 안 나가는 책은 결국 자리를 잃고요.
나를 잘 아는 것만 만나면,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는 끝내 모르게 된다.
화면에서 정하고 오시는 걸 말리지 않습니다. 그건 시간을 아끼는 좋은 방법이죠.
다만 그 책을 찾으러 서가에 가셨을 때 그 칸을 한 번만 훑어보십시오. 찾던 책 양옆과 위아래 칸 정도면 충분합니다. 삼십 초면 되고, 거기서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그날은 두 권을 빌리시는 겁니다.
그 한 권이 목록에서는 절대 안 나올 책이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저희에게 물어보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희는 무엇을 좋아하셨는지 모르니까 다르게 묻습니다. 요즘 어떤 게 궁금하신지, 최근에 읽고 별로였던 건 뭔지요. 그러면 좋아한 것과 비슷한 게 아니라 지금 필요한 게 나옵니다.
목록을 보여주셨던 그분은 그날 네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세 권은 화면이 골랐고, 한 권은 옆 칸에서 집으셨죠. 저는 그 한 권이 궁금합니다.